“올 것이 왔다.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국내 은행들은 지난해 4ㆍ4분기에 분기적자를 내고 순익이 큰 폭으로 감소한 것을 예상했던 일로 받아들이고 있다. 오히려 올해와 내년도를 어떻게 버티느냐가 관건이라고 하소연하고 있다. 지난해는 출자전환 주식 매각이익이 빠지면서 순익이 반토막났지만 올해는 부실기업 구조조정과 가계 부실이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따라 또 다시 반토막이 날 수도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특히 10조원의 충당금으로 충분할 것이냐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업계에서는 은행별로 얼마나 방파제(충당금)를 잘 쌓았느냐에 따라 은행 간 희비가 엇갈릴 것으로 내다봤다. ◇순익 반토막, 수익성 지표 급락=지난해 18개 국내 은행은 비이자이익 급감과 충당금 전입액 급증으로 순익이 급감했다. 지난 2007년에는 3조8,000억원 규모의 출자전환주식 매각이익과 유가증권 평가이익 등으로 6조4,000억원의 유가증권 관련 이익을 얻었지만 지난해는 7,000억원에 그쳤다. 유가증권 관련 이익만 5조7,000억원이 줄어든 것이다. 2003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순익이 반토막나면서 수익성 지표인 총자산순이익률(ROA)도 1.10%에서 0.49%, 자기자본이익률(ROE)은 14.60%에서 7.29%로 절반가량 낮아졌다. 순이자마진은 2.44%에서 2.29%로 낮아졌지만 자산규모가 커지면서 이자이익은 31조2,000억원에서 34조원으로 2조8,000억원(9.1%) 늘었다. 하지만 올 1ㆍ4분기부터는 기준금리 인하에 따른 대출금리 인하로 순이자마진 폭이 더 줄어 이자이익의 증가세를 기대하기 힘들게 됐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들의 자산부채 만기구조가 급격한 금리하락에 취약하게 짜여져 있다”며 “시중금리 하락에 따른 순익규모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실물경기 침체, 구조조정은 이제부터 시작=국내 은행은 지난해 4ㆍ4분기에만도 5조원의 충당금을 쌓았다. 충당금은 미래 부실에 대비해 적립금을 미리 쌓아놓은 것으로 은행들은 5조원 안팎을 유지해왔다. 은행들은 지난해부터 경기침체가 시작되면서 중소기업대출과 가계대출 연체율이 크게 올라가자 충당금을 10조원으로 두배 늘렸다. 지난해 국내 은행의 중소기업 연체율은 1.70%로 0.70%포인트 급등하면서 전체 원화대출 연체율도 1.08%로 0.34%포인트 상승했다. 구조조정 대상 16개 기업에 대해 1조원을 추가로 쌓고 나머지 기업과 가계대출에 대해 4조원을 쌓았다. 그러나 은행들의 수익성 하락은 올해부터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주재성 금융감독원 은행업서비스본부장은 “은행들이 지난해 4ㆍ4분기에 건설사와 조선사에 대한 1차 구조조정 결과를 반영하면서 충당금 규모가 늘었다”며 “경기나 기업 구조조정, 시중금리 하락 추세 등을 감안하면 은행들의 올해 성적도 좋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한 시중은행 부행장은 “이제 막 건설사와 조선사 일부에 대한 구조조정을 시작했을 뿐 본격적인 구조조정은 아직 시작도 안했다”며 “실물경기 침체도 아직 본격화되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은행들이 감내해야 하는 충격은 훨씬 더 클 수 있다”고 말했다. ◇은행별 명암 뚜렷이 엇갈린다=올해 은행 전체적으로 순익규모가 줄면서 은행별 편차는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자산성장기 때는 은행별 전략에 따라 부실규모나 순익에 큰 차이가 없었지만 경기침체가 본격화되면 은행별로 자산건전성과 자본적정성 여부에 따라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은행의 올해 순익이 30%가량 줄어들 것으로 전망한다. 이는 이자수익 감소와 구조조정에 따른 손실증가를 반영한 것이다. 구용욱 대우증권 애널리스트는 “올 상반기 대손충당금 규모가 늘고 순이자마진이 줄어들면서 은행들의 순이익은 20~30% 이상 감소할 것”이라며 “하반기 경기하강이 완화되고 구조조정 강도가 약해지면서 수익성이 나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계에서는 순익이 다시 반토막나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 시중은행 기획담당 임원은 “국제통화기금(IMF)이 예상한 대로 국내 경기가 올해 급락한 후 내년에 급반등한다면 은행이 추가로 대규모 충당금을 적립할 부담은 없을 것”이라며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대손충당금 부담이 지금보다 더 커지고 은행에 따라서는 생존이 어려운 곳도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