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매뉴얼에 발목잡힌 지경부

"떨어질 듯, 떨어질 듯한데 떨어지지 않는다" 늦가을 가지 끝에 매달린 잘 익은 감을 놓고 하는 말이 아니다. 두바이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사수'하고 있는 상황을 빗댄 말이다. 두바이유는 최근 미국의 재정위기로 각종 위험자산이 직격탄을 맞은 가운데서도 강세를 이어가며 '독야청청'하고 있다. 두바이유는 지난 6월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전격적인 비축유 방출 때에도 반짝 하락에 그치더니 이번 재정위기 파고 속에서도 예상과 달리 100달러선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두바이유는 2월 21일 이후 매일 100달러 윗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고민이 깊어지는 곳은 바로 지식경제부다. 최중경 지경부 장관은 최근 직접 주유소를 찾아 '기름값을 잡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휘발유 값에만 매달리다 보니 벌써 6개월 가까이 지속되는 에너지 비상조치는 잊은 것일까. 지경부는 2월 말에 유가 상승으로 에너지 비상조치 단계를 '주의'로 격상시켰다. 따라서 현재까지 아파트나 공공건물의 경관 조명은 물론이고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 유흥업소등의 심야 강제소등 조치가 계속되고 있다. 올 초 정부는 2008년 고유가 때처럼 이번에도 국제유가가 단기간에 100달러를 치고 오른 후에 머지않아 다시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더욱이 정부는 에너지 비상조치 매뉴얼에 묶여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였다. 매뉴얼에 따르면 두바이 국제유가가 100달러 이상 5일 이상 지속될 때 비상을 발령한 만큼 이를 푸는데도 100달러 이하가 5일 이상 계속돼야 하기 때문이다. 즉, 국제유가 100달러가 깨지지 않는 한 매뉴얼에 따라 비상조치는 계속돼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문제는 지나치게 장기화하고 있다는 데 있다. '비상'조치가 어느덧 '상시'조치로 굳어지고 있는 셈이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처럼 강제소등에 따른 관련 업계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실제로 요즘 들어 새벽 2시에도 간판을 끄지 않는 유흥업소들이 시행 초기와 달리 눈에 띄게 많아졌다. 하지만 반년 가까이 정부 시책에 협조해온 이들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뛰쳐나오는 것에 정부도 마냥 채찍을 들기가 무안한 상황이다. 상황이 바뀌면 대처 방법도 바뀌어야 한다. '매뉴얼이 그렇다'고 마냥 손 놓고만 있는 것 역시 탁상행정의 또 다른 모습과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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