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기존 직원도 줄여야 할 형편인데…(취업대란)

◎신입사원 “뽑을까 말까” 속앓이/일부기업선 “선발 아예포기” 검토/모집광고도 축소… 대학의뢰 확대『기존 인력도 줄여야 하는 판에 신입사원을 또 뽑아야 하니 고민입니다. 경영여건을 감안하면 안 뽑는게 최선이지만 그랬다간 각 대학에서 비난이 쏟아질 겁니다. 더욱이 올해는 대선까지 겹쳐 실업문제가 대두되는 것을 원치않는 정당과 당국자 눈치도 봐야하는 실정입니다.』 H그룹 인사담당임원인 L이사는 하반기 채용계획을 확정·발표하기까진 아직 1∼2개월의 기간이 남아있는데도 벌써부터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특히 얼마나 뽑아야할 지 판단하지 못해 속앓이를 하고있다. 판매부진과 자금난으로 어려움을 겪고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아예 신규채용을 포기하는게 바람직하지만 기업규모상 그럴 수도 없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L이사는 그래서 『외부에서 채용계획을 물어보면 그냥 지난해 수준에서 검토하고 있다고만 말한다』면서 『설사 채용인원을 확정해도 취업희망자들이 가능한 한 원서를 내지 않았으면 하는게 솔직한 바람』이라고 고충을 털어났다. 이런 고민은 비단 H그룹만의 문제가 아니다. 다른 30대그룹 대부분이 마찬가지다. 각 그룹 채용담당자들은 대졸신규채용계획에 대해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 『지난해 수준에서 검토하고 있다』며 L이사와 비슷한 말을 한다. 실제 정해지지 않은 측면도 있지만 이보다는 뽑긴 뽑아야 하는데 여건이 안되고 섣불리 채용규모를 줄여 발표했다간 곳곳에서 원성을 사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왜 이렇게 고민하는 지는 기업들이 처해있는 어려운 실상을 들여다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현재 30대 대기업은 물론 은행권, 공기업 등 기업마다 불황타개를 위한 구조조정작업이 한창이다. 부진사업에 대한 철수와 유사업종 합병 등으로 기존직원도 명예퇴직제 등을 통해 감원하고 있는 추세다. 쌍룡그룹은 상반기 중 쌍용자동차와 쌍용양회에서 1천명을 줄인데 이어 하반기에도 2차 감원을 추진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나·두산·한일 등도 이미 인력을 감축했거나 감원을 추진중이다. 한보·삼미·진로·대농·기아 등 부도를 냈거나 부도위기에 처해있는 기업들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아예 신규채용 자체가 불가능한 실정이다. 그렇다고 삼성·LG 등 상위그룹들의 여건이 호전된 것도 아니다. 이들 기업조차도 불황타개와 인건비를 절감하기위해 인건비 총액관리제를 실시, 인력의 자연감소가 생겨도 충원을 하지 않고 있다. 상황이 이러니 어떤 기업이든간에 신규채용규모는 쉽사리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기업들의 고민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신규채용인력을 늘린 형편이 아닌데 취업희망자는 오히려 늘어 문제의 심각성을 더해 주고있다. 취업전문기관인 (주)리크루트 등에 따르면 올 하반기 대졸취업희망자는 32만4천명 수준으로 지난해 하반기의 27만명보다 20%나 늘어날 전망이다. 대학 등으로부터 채용확대 요구가 그 어느해보다 거세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기업들이 선뜻 하반기 채용규모를 확정짓지 못하고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나 주요그룹들이 하반기채용계획에 대해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얼버무리고 있는 것도 이같은 속사정 때문이다. 『올해는 사람을 뽑아도 일간지에 채용광고를 내는 것은 가능한 한 줄이고 대학신문에 일회성 채용공고를 내거나 대학 취업보도실 공문으로 대처할 계획입니다.』 K그룹 J상무는 하반기 대졸자 신규채용과 관련, 가능한 눈에 띄지 않게 채용공고를 낼 계획이라고 말한다. 이 그룹이 1∼2년전까지만해도 취업준비생들의 눈길을 끌기위해 톡톡 튀는 광고문구를 준비했던 것을 감안하면 극히 대조적인 현상이다. 한명이라도 더 유능한 인재를 확보하기위해 치열한 유치작전을 벌였던 예년의 채용 때와 달리 이제는 지원자를 줄이기위해 지혜를 짜내야 할만큼 세상이 각박해졌다.<이용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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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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