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광범위한 자본력 바탕 진출 서둘러/기존금융기관 경쟁력악화 불보듯… 한숨만여신전문금융기관(여전)이 입법예고된지 두달반. 여전은 기업들에게는 금융업 진출을 위한 「희망봉」인 반면 기존 금융기관들에게는 시장침식에 대한 불안의 대상으로 부각되고 있다. 이 때문에 법안의 국회통과를 앞두고 기업금융기관간 물밑 신경전도 대단하다. 여전 신설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않은 실정이다. 여전법이 국회에 상정된 상황에서 향후 여전시장 장악을 위한 각계의 사전작업 실태와 문제점을 긴급 진단한다.<편집자주>
리스 카드 할부금융 신기술금융 등 대출업무를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는 「대출 백화점」. 재경원은 지난 5월2일 「여신전문금융업법」을 입법예고하면서 여전의 기능을 이렇게 설명했다.
법안이 원안대로 국회를 통과할 경우 여전의 4가지 사업부문중 카드사업을 제외한 나머지 사업부문은 모두 등록제로 전환돼 진입장벽이 완전히 사라진다. 최소 2백억원(2가지 업종, 4가지는 4백억원)만 있으면 누구나 금융산업에 뛰어들 수 있다는 얘기다.
현재 여전에 해당되는 4가지 업종의 총 시장 규모는 줄잡아 약 1백조원. 여전시장이 본궤도에 들어설 2000년께는 시장규모가 1백60조원에 이를 것으로 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당연히 그동안 금융산업 진출에 목말라있던 대기업들은 여전 준비작업에 불을 당기고 있다. 현재 움직임대로라면 최소 50대그룹에 속하는 대기업군은 예외없이 여전에 뛰어들게 틀림없다.
이중 일부는 이미 구체적 실무작업에 착수한 상태다. 경쟁그룹의 눈치때문에 발표를 미루고 있을 뿐, 몇몇 기업은 법안통과와 동시에 여전시장 참여를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중견기업들도 마찬가지. 모 중견기업의 여전작업 실무자는 『최근 파이낸스사를 설립한 기업들은 여전에 뛰어들 것으로 판단해도 좋다』고 설명했다.
상호신용금고 사주들도 금고 경영보다 여전 설립쪽에 관심을 쏟고 있다. 사조와 우풍상호신용금고의 경우 금고는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사주들은 여전 설립에 치중하겠다는 입장이다.
외국계 기업들도 여전시장에 군침을 흘리고 있다. 제너럴일렉트릭(GE) 계열의 GE캐피털, 포드계열의 FMCC, 제너럴모터스(GM)산하의 GMAC 등은 첨단금융기법을 앞세워 국내 금융시장 공략을 자신하고 있는 대표적 집단들. 이들과의 합작을 추진중인 국내기업들도 상당수에 이른다.
여전을 금융시장 진출 창구로 여기고 있는 대기업들은 초기부터 여전을 대규모로 설립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삼성 등 재벌그룹은 초기부터 여전의 납입자본금을 3천억원수준으로 책정하고 있다. 전북, 강원, 충북, 제주은행 등 상당수 지방은행의 자본금을 웃도는 규모다. 재벌그룹들이 여전에 거는 기대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문제는 기존 금융기관. 이들도 나름대로 준비작업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밑그림조차 그리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 시중은행의 여전 기획담당자는 『한발자욱도 나가고 있지 못하다. 내년에 대기업의 움직임을 보고난후에야 작업에 들어갈 것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일부 지방은행계열 금융기관들이 상호제휴를 통해 대기업의 여전 진출에 공동대응하려는 정도가 고작이다.
여전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이같은 상황에서 비롯되고 있다. 재벌들이 광범한 네트워크와 추진력, 자본력을 내세워 금융시장에 파고들어올 경우 리스사 등 기존 은행계열 금융기관들의 경쟁력이 급격히 악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특히 재벌그룹들이 기존 금융기관들과의 거래를 계열 여전으로 옮기면서 기존 금융기관들의 「먹거리」는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바람직한 관계가 채 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여전을 통한 산업자본의 금융지배시대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김영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