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은 3학년 강모씨도 비슷하다. 강씨의 지난 학기 평점은 4.5점 만점에 3.9점으로 우수한 편이었지만 강씨는 A 미만의 모든 과목의 성적을 모두 C와 D로 낮췄다. 대학원 진학을 위해서는 4점이 넘어야 한다는 주변의 조언 때문이었다. 강씨는 "대학원에 진학하려고 하는데 3점대 학점은 합격을 보장할 수 없어 재수강을 하려고 한다"며 "비싼 등록금을 내고 같은 수업을 두 번 듣는 게 아깝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3일 대학가에 따르면 많은 대학생들이 성적정정기간 동안 의도적으로 학점을 낮추는 기현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각 대학이 재수강 기준을 특정 학점 미만으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서울대와 연세대·고려대·중앙대·한양대·성균관대 등 대부분의 대학은 재수강을 할 수 있는 자격을 'C+학점 이하의 성적을 취득한 교과목'으로 제한하고 있다. B를 받으면 재수강을 할 수 없는 탓에 의도적으로 성적을 낮춰 같은 과목을 다시 수강하고 A를 받으려는 것이다.
대학생 박모씨는 "어차피 취업이 안되면 졸업을 늦춰야 하고 그러면 1~2 학기 동안 학교를 더 다니면서 수업을 들을 기회도 많을 텐데 굳이 나쁜 학점을 안고 갈 필요가 없다"며 "일각에서는 3.5점만 넘으면 된다고 하지만 결국 '고고익선(높으면 높을수록 좋다는 뜻)'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학생들의 믿음은 사실과 다르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지난해 상반기 200개 기업의 신입사원 평균 스펙을 조사한 결과 학점은 4.5점 만점에 3.5점에 그쳤다.
평가반영 정도를 조사한 또 다른 설문조사에서도 학점은 하위권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고익선이라는 학생들의 믿음과 달리 실제 취업에서는 다른 영역들이 더욱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임민욱 취업포털 사람인 팀장은 "열린 채용으로 학점의 중요성이 낮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공기업 등은 성실성의 한 지표로 학점을 평가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높은 학점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라며 "특히 매달 응시해 새 점수를 받을 수 있는 토익 등과 달리 학점은 졸업하면 끝이기 때문에 학생들이 더욱더 재수강을 통한 학점세탁에 매달리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교수들은 우려의 눈길을 보낸다. 서울 소재 대학의 한 교수는 "성적은 상대평가이기 때문에 같은 과목을 두 번 듣는다고 해서 더 좋은 학점을 받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교수도 "오죽 취업이 힘들면 학생들이 이렇게까지 하겠느냐"고 안타까워하면서도 "성적에만 목을 매기보다는 다양한 수업을 듣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