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저축의 위기

자본축적을 통해 투자가 끊임없이 이뤄지지 않고서는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없다는 명제만큼 일반화된 경제이론도 드물다. 단기간에 기술이 불변이라고 가정할 때 산출은 투입되는 자본과 노동의 함수라는 전통적인 생산이론은 예나 지금이나 진리로 통한다. 단순화하면 중국이 십수년째 고도성장을 지속하고 있는 것도 국내의 저렴하고 풍부한 노동력과 앞다투어 진출하는 외국자본이 결합한 결과다. 고도성장을 구가한 우리나라의 개발연대를 중국이 그대로 답습한다고 해서 조금도 이상할 게 없다. 지금보다 소득수준이 낮고 생활형편이 어려웠던 개발연대 내내 저축을 미덕으로 여겼던 것도 이 같은 경제성장에 필요한 자본축적의 일환이었던 셈이다. 정부가 저축률을 높이기 위한 각종 인센티브를 끊임없이 내놓고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주는 상 가운데는 저축상이라는 것이 빠지지 않았다. 돈을 만지기 어려운 가난한 학생들은 저축을 채우기 위해 가을걷이가 끝난 들판에 나가 벼이삭을 줍는 수고마저 아끼지 않은 시절도 있었다. 정부의 강력한 저축 드라이브와 국민의 근검절약 정신 덕분에 우리나라는 소득수준이 비슷한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히 높은 저축률을 유지할 수 있었다. 본격적인 경제개발이 시작된 이래 우리나라 저축률은 전반적으로 30%를 웃돌았고 지난 88년에는 34%에 이르기도 했다. 이 같은 높은 저축률은 자본축적으로 이어져 고도성장을 위한 투자재원으로 활용됐다. 그러나 국내 저축을 통해 이뤄지는 자본축적만으로는 왕성한 투자수요를 감당할 수 없어 항상 외국자본을 끌어다 쓰는 만성적인 자본부족국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외환위기의 뿌리가 된 것이다. 80년대 후반 이후 저축률이 해마다 떨어져 27%선까지 낮아졌다고 한다. 저축률만 떨어진 것이 아니다. 그동안 저축의 주역이었던 가계 부문이 지고 있는 금융부채규모는 420조원을 넘어섰고 머지않아 500조원에 이를 것이란 전망이다. 가계와 비슷하게 소비주체인 정부 부문도 공적자금을 포함해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내채(內債)위기라는 말이 나올 만도 하다. 반면에 생산주체인 기업 부문에서는 오히려 자금이 남아도는 기업들이 적지않다는 것이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소비주체이면서 저축을 통해 자본축적을 담당하는 가계 부문의 수지는 적자이고 투자주체로서 자금수요자인 기업 부문의 자금수지는 흑자상태로 반전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가계부문이 축적된 자본의 수요자가 되고 기업부분은 여유자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투자를 안하는 상황에서도 경제가 정상적인 성장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노파심도 생긴다. 저축률이 크게 떨어지긴 했지만 외환위기 이후 경상수지가 큰 폭의 흑자를 유지하고 있어 외채를 끌어다 소비에 충당하는 극단적인 상황은 아니라서 위안은 된다. 그러나 지금처럼 소비증대로 수입이 증가하고 해외씀씀이가 그대로 지속되는 경우 다음해 경상수지 흑자규모는 30억달러 안팎으로 급감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언제 경상수지가 적자로 반전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렇게 되면 낮은 저축률은 우리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협하는 심각한 요인이 될 수도 있다. 구조조정으로 기업의 부채비율이 낮아지고 수십년 만에 저금리기조에 들어서기는 했으나 기업투자 활성화ㆍ주가상승등과 같은 바람직한 효과보다는 엉뚱하게 소비욕구만 잔뜩 부추긴 형국은 아닌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그 과정에서 저축의 중요성을 망각했다면 더 큰일이다. 우리가 저축의 중요성을 망각해도 되는 유일한 이유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외국인투자를 유치할 수 있다는 것밖에 없다. 그러나 과도한 외채가 위험하듯이 우리경제가 지나치게 외국인투자에 의존하게 되는 것도 반드시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는 것은 외국인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증시에서 잘 드러난다. 외환위기가 '소비가 미덕'인 시대를 앞당기는 계기가 돼서는 곤란하다. 저축의 위기는 외환위기의 뿌리와 닿아 있기 때문이다. 논설위원(經營博) document.write(ad_script1); ▲Top | | || |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