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실험이 있기 전 여권의 한 고위인사는 기자들과 가진 사적인 만남에서 이렇게 말했다. 굳이 북한 핵 위기가 본격화되지 않았더라도 한국 경제는 이미 경기침체에 접어들고 있다는 안팎의 경고가 잇따르고 있는 상황이었다. 강봉균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이 내년 경제가 예사롭지 않다며 “경기부양이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하고 나서고 있는 것에서 여권의 위기 의식을 느낄 수 있다. 흔히 말하는 잠재성장률 4~5%로는 국민들의 체감경기가 나아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정치인들은 본능적으로 체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와중에 북한 핵실험이라는 메가톤급 변수가 돌발한 것이다. ‘경기부양론’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는 하지만 정부가 추진하려는 경기 부양의 여러 가지 방법론이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라는 데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성장률 5%는 마의 벽, 정부 위기감 고조=여당은 물론 이제 과천 관가에서도 경기부양론이 잇따라 흘러나오고 있다. 조원동 재정경제부 경제정책국장은 11일 모 방송에 출연, “경기 추이를 봐서 필요하다면 경기부양으로 기조를 바꿀 준비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앞서 권오규 부총리도 10일 국회에서 “(경기가) 위축 된다면 경기 확장의 필요성이 있다”는 등 예전과 다른 메시지를 전달했다. ‘경기 부양’이라는 단어 자체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던 재경부의 입장에서 보면 큰 변화가 아닐 수 없다. 문제는 각종 변수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경기부양을 위해 내놓게 될 정책이 힘을 발휘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데 있다. 물론 북한 핵 실험 사태가 평화적으로 해결이 되면 지정학적 리스크 감소라는 호재로 바뀔 수 있지만 현재로서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 않아도 올해 이미 정부가 목표로 한 5% 성장이 어렵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내년은 사정이 더 심각하다. 북한 핵실험 사태와 유엔 제재 등의 영향이 순차적으로 반영되면서 소비ㆍ설비투자 부진 심화, 수출 둔화 등의 부작용이 본격적으로 반영될 여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내년 성장률을 4.6%로 전망하고 있다. 반면 외국 분석기관은 평균 4.25%라는 수치를 내놓고 있다. LG경제연구소 등 국내 기관들은 4%대 초반, 최악의 상황에는 2~3%대도 점쳐지고 있다. 2003~2005년 우리 경제는 3~4% 성장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올해와 내년 성장률 사이클을 보면 참여정부에서 5%의 성장률은 점점 ‘마의 벽’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상무는 “저성장 국면이 고착화 라는 현실을 피부로 느끼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경기부양 카드, 효과 거둘 수 있을까=정부가 동원할 수 있는 경기부양 카드로는 예산 조기집행, 사회간접자본 등 건설투자 확대, 추경편성, 금리 인하 등이 활용 가능한 정책이다. 전문가들 역시 실물경기 위축이 현실화된다면 대책이 필요하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정책의 효과 여부다. 금리 인하만 놓고 보자. 외국자본이 빠지면 이들을 잡기 위해 경기침체 속에서도 금리를 올려야 하는 상황으로까지 몰릴 수 있다. 건설투자 확대도 부동산 안정대책이 시차를 두고 나타날 경우 추가 위축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아울러 소비 진작을 위한 대책도 가계 저축률이 3.9%(2005년 기준)로 바닥권에 진입해 있어 효과를 점치기 어렵다. 가계들이 소비보다 저축에 나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국가채무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추가 적자국채 발행도 쉽지 않은 것도 현재의 상황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거시정책과 미시정책을 잘 혼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규제완화를 통한 투자활성화라는 미시적 정책도 동반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래저래 정부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