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발언대/7월 14일] 내 탓, 네 덕

정진택(생명보험협회상무)

최근 인기가 높은 TV 오락프로그램을 보면 유명 연예인들이 나와 서로 뒤질세라 입담을 자랑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톡톡 튀는 신세대들은 물론 중장년 출연자들에 이르기까지 상대방의 약점을 들춰내거나 실패담을 직설적으로 공격하고는 해서 웃음을 유발해낸다. 코미디도 마찬가지다. 상대의 외모나 능력을 비틀고 폄하하는 가학적인 코미디가 많아졌다. 듣기 좋은 이야기를 해주는 것은 눈길도 못 끌뿐더러 촌스러운 구식으로 취급받는다. 하지만 염려되는 점은 이런 직설화법 내지는 가학 코미디를 우리 청소년들이 즐기면서 멋지고 시원하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어린이가 등장하는 프로그램도 예외는 아니다. 상대방의 외모를 비하하거나 어른을 놀림감으로 삼는 말 잘하는 어린이가 명석하고 재치있는 것처럼 비치기까지 한다. 이런 왜곡된 설정을 어린 세대가 듣고 보면서 자라난다는 것은 더더욱 염려되는 점이다. 웃음은 즐거운 마음의 표현인데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는 웃음조차도 상대를 무시함으로써 얻고 있지는 않은지, 웃기기 위해 남의 책망거리를 찾지는 않는지 모르겠다. 튀지 않으면 어떻고 촌스럽고 구식이면 어떤가. 체면치레면 또 어떤가. 칭찬과 권면으로 우리 모두의 자존감을 높여 볼 때다. 어려울수록, 삶이 고단할수록 남을 칭찬하고 높여주는 여유를 찾아보자. 잘못은 내게서 찾고 공은 남에게서 찾을 일이다. 맹자(孟子)는 “일에 대처할 때 항상 행하고도 얻지 못함이 있거든 모두 자신에게 돌이켜 찾아야 한다(反求諸己)”고 했다. 남을 사랑해도 친해지지 않거든 자신의 마음을 돌이켜보고 다른 사람을 다스려도 다스려지지 않거든 자신이 지혜로운가를 살펴보고 사람에게 예를 다해도 답례하지 않거든 자신이 공경함을 다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20여년 전 한 종교단체에서 벌였던 ‘내 탓이오’라는 캠페인이 생각난다. 당시 사회적인 위기와 혼란 속에서 자성의 모범을 보이자는 운동이었는데 대표적으로 차량에 ‘내 탓이오’ 스티커를 붙이고 다녔던 것이 기억된다. 덕과 공을 돌리면 받는 사람뿐만 아니라 주는 사람에게도 엄청난 긍정적인 에너지가 생긴다고 한다. 사회 전반에 걸친 갈등과 대립을 되돌아보며 ‘내 탓이오’에 덧붙여 ‘네 덕이오’를 주고받는 봄이 됐으면 한다. 서로를 품으면 따뜻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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