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판사가 쓰는 법이야기] <13> 법정에서 증언 잘하는 법

장황한 설명보다 질문에만 답변을… 차분하고 조리있게 말해야 신뢰 얻어


송오섭 서울중앙지법

살다보면 누구나 한번쯤 송사에 얽히는 불운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가장 피하고 싶은 경우는 자신이 직접 민ㆍ형사 사건의 당사자가 돼 재판을 받는 것이겠지만, 다른 사람의 사건에 증인으로 채택돼 법정에서 증언하는 것도 웬만하면 피하고 싶은 일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증인’이란 구체적 사건에 관해 법원에서 자기의 경험에서 알게 된 사실을 진술하도록 명령 받은 제3자입니다. 우리의 법은 법률에서 특별히 정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누구나 증인으로 출석해 선서하고 증언해야 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증인으로 채택돼 법원의 소환을 받았음에도 정당한 사유 없이 불응한 경우에는 강제구인이나 과태료, 심지어는 감치까지 처할 수 있게 하는 한편, 허위 진술을 하면 위증죄로 처벌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법정에 선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두렵고 망설여질 것입니다. 게다가 자신의 증언으로 불리해지는 소송당사자로부터 애꿎은 원망을 살 수 있다는 부담도 만만치 않습니다. 증인으로 채택됐다는 소식이 그리 달갑지 않음은 오히려 당연합니다. 그러나 재판을 하다 보면 증인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특히, 별다른 물증이 없는 사건에 있어서는 사건을 경험한 제3자의 법정 증언이 법관의 판단에 중요한 근거가 됩니다. 그런데 채택된 증인이 출석을 거부한다면 자칫 법원의 잘못된 판단으로 돌이키기 어려운 억울함을 당하는 국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출석을 거부한 증인에 대해 때로는 법률에서 정한 제재를 하면서까지 증언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법정에서 증언을 듣다 보면 여러 경우를 만나게 됩니다. 우선, 십년 전에 우연히 만난 친구와 나눈 이야기를 어제 일같이 증언하는 모습을 볼 때가 있습니다. 과연 그 증언에 신빙성이 있을까요? 증인은 자신이 경험한 사실을 기억 나는 대로 증언해야 합니다. 사람의 기억에는 한계가 있고 그 기억이 반드시 진실한 것이라고 단정하기도 어렵습니다. 법정은 증인의 기억력을 테스트하는 곳이 아닙니다. 법정의 낯선 분위기 탓에 긴장해 잠시 기억을 놓친 것이라면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기억을 되살려 보되 그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기억나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해야 합니다. 억지로 그럴듯한 내용을 만들어 증언하는 것은 올바른 증언이 아닐 뿐더러 위증의 시비마저 야기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증언을 하면서 처음부터 자신이 경험한 일 전부에 대하여 장황하게 말하려고 하거나 질문에 관계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을 되풀이하는 증인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런 증언은 시간 지연의 원인이 될 뿐만 아니라 자칫 증언의 신빙성을 해할 염려도 없지 않습니다. 증인은 질문의 요지를 잘 파악하고 묻는 사항에 대하여 답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잘 알아듣지 못하였거나 질문이 장황하였다면 다시 질문해 달라고 하거나 질문을 짧게 끊어서 물어봐 달라고 요구해도 좋습니다. 질문에 포함되지는 않았으나 사건에 관하여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증언이 끝난 후에 재판부의 허가를 받아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증인들 중에는 간혹 신문사항을 미리 받아서 답변할 내용을 적어오거나 자료를 가지고 와서 이를 보면서 증언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증인은 법정에서 기억에 의존해 증언해야 합니다. 미리 써놓은 답변을 보고 증언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그 증인은 한쪽 당사자와 사전에 말을 맞춘 것으로 의심 받을 수 있다는 것도 유의하셔야 합니다. 한편, 반대신문에 대해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대응하거나 아예 증언을 회피하는 모습도 가끔 보게 됩니다. 대개 증인은 중립적이라기보다는 일방당사자에게 유리한 내용으로 증언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런 때에 그 증언의 신빙성은 상대방의 반대신문을 통해서 비로소 얻어지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재판부로서는 반대신문에 대해서도 차분한 어조로 진지하고 조리 있게 답변하는 증인을 더 신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건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판사들로서는, 그들이 신이 아닐진대, 진실에 접근하는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럴 때에 증인의 신빙성 있는 증언은 판사들로 하여금 진실에 근거한 올바른 판단으로 나아가게 하는 밝은 등불이자 사법정의 실현의 큰 디딤돌입니다. 법정에서 증언하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시지 않을 여러분들께 무한한 감사와 경의를 표하면서, 그 노고를 헛되이 하지 않도록 맡은 재판에 정성을 다할 것을 다시 한 번 다짐해 봅니다. ▦ 이글은 본지 홈페이지(hankooki.com)뿐만 아니라 서울중앙지방법원 홈페이지(seoul.scourt.go.kr) ‘법원칼럼’을통해서도 언제든지 볼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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