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0년의 일이다. 당시 금융권 취재를 담당했던 기자는 은행권의 새로운 대출금리 지표인 자금조달비용지수(COFIXㆍ코픽스)가 다른 금리지표들과 괴리된 흐름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수상함을 느껴 금리 검증을 시도했지만 코픽스 공시를 담당하는 은행연합회 측에서는 "원가를 알 수 없어 검증할 방법이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코픽스는 각 은행들이 전산망을 통해 각각의 자금 조달금리를 입력하면 이를 일정한 공식에 따라 가중평균하는 방식으로 자동산출된다. 이때 각 은행들이 얼마의 금리를 입력했는지 해당 은행 말고는 알 수가 없으며 입력수치도 기록으로 남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해 기자는 4월19일자 조간으로 '코픽스가 이상하다'라는 제하의 기사를 썼다. 연합회측은 "코픽스는 영국 리보(Liborㆍ런던 은행 간 금리) 등 선진국들의 금리산정체계를 벤치마킹한 것인데 그러면 리보금리가 잘못됐다는 것이냐"고 반발했다.
그런데 한참 뒤 유럽에서 리보금리 조작 사건이 터졌다. 선진국 금리체계라는 것의 허상이 드러난 셈이다. 하지만 은행권은 물론이고 금융감독당국의 어느 누구도 코픽스는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고 지적하는 이가 없었다.
결국 올해 코픽스 공시 오류 사고가 발생했다. 4만여명이 코픽스 산정 실수로 대출 이자를 더 부담했다고 한다. 그나마 한 은행의 단순 입력 실수가 뒤늦게나마 발견됐으니 망정이지 자칫하면 코픽스의 오류 가능성을 지나칠 뻔했다.
최근에야 금융 당국은 3단계로 검증장치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후 검증장치만으론 부족하다. 은행들이 조작이나 실수를 하지 못하도록 압박할 사전적 통제장치가 필요하다. 바로 '금리 블랙박스'를 만드는 일이다.
알다시피 블랙박스는 평상시 운행기록만 하다가 중대 사고시만 열어 보는 기록장치다. 감독 당국이나 은행연합회에 일종의 블랙박스용 서버를 만들어 은행들이 입력한 금리를 전산상으로 자동 백업해 평상시에는 아무도 열람 못하도록 하면 영업비밀 문제는 해결된다. 해당 블랙박스는 은행의 중대한 잘못이 발견되거나 금리흐름이 현저히 시중금리와 괴리될 경우에만 금융 당국이 열람할 수 있도록 한다면 은행들은 스스로 더욱 주의를 기울이게 될 것이다. 만약 사고가 터져도 어느 은행 책임인지 확실히 가릴 수 있다. 이는 코픽스뿐 아니라 양도성 예금증서(CD) 금리를 포함해 금융사들이 입력한 금리를 전산상으로 자동평균 내는 모든 금리지표에 적용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역사든 시장이든 가장 무서운 것은 기록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