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피플

"문명의 도구가 되지 마라" 법정스님 4주기 추모법회

길상사에서 열려

"봄이 와서 꽃 피는 게 아니라 꽃이 피니 봄이 온다"

“눈이 많이 내리면 꼼짝달싹 못하고 차 안에 갇혀 버리게 되죠. 도시문명의 부작용입니다.”

25일 서울 성북동 길상사 설법전에서 열린 법정 스님(1932∼2010) 4주기 추모법회에서 스님의 카랑카랑한 육성이 울려 퍼졌다. 700여 명의 참석자들은 스님이 생전에 했던 법문 영상에서 눈을 뗄 줄 몰랐다.


법정 스님은 ‘문명의 소도구로 전락하지 말자’는 주제의 법문에서 인간이 만들어낸 물질문명의 노예가 되지 말고 사람다움과 여유를 잃지 말 것을 강조했다.

“전자우편은 편합니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금방 소식을 주고받을 수 있어요. 하지만 모든 일에는 뜸들일 시간이 필요한 법입니다. 특히 인간관계가 그래요. 진정한 관계는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고 세월을 통해 다져집니다.”

그러면서 그리움을 그린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 같은 시는 인터넷 세상에서는 결코 나올 수 없을 거라고 했다.

법정 스님은 “순간 순간에 감사하고 누릴 줄 알아야 한다. 순간을 수단시하고 살면 평생을 살아도 남는 게 없다. 목표를 좇아 급하게 달리지 말고 여유를 갖고 돌아갈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육성에서는 법정 스님이 외국 방문 때문에 운전면허 갱신 기간을 놓쳐 출입국기록 확인서를 떼러 갔던 경험도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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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등록번호 하나만 입력하니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외국을 드나든 기록이 하나도 빠짐없이 나와서 깜짝 놀랐어요. 편리함에 놀란 게 아니라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당하고 있다는 사실에 섬뜩했습니다.”

법정 스님과 반세기를 같이 지낸 송광사 법흥 스님은 추모법문에서 “스님은 성격이 치밀하고 시간을 소중히 여겼으며 자신의 공부를 하려고 노력했다”고 회고하고 “속가에서 읽은 책만 해도 한 트럭이 넘었다”고 말했다.

법흥 스님은 법정 스님이 대차게 입바른 소리를 하던 일화도 소개했다.

법정 스님은 베트남전쟁에 파병된 한국군의 전사자가 속출하자 불교계가 천도제를 지내려는 움직임을 두고 “중이 정부에 아부한다”는 글을 신문에 기고했다가 당시 총무원장에게 불려가 혼났다고 한다.

또 1970년대 초 조계종이 봉은사 땅 10만평을 매각하려 하자 “봉은사가 팔린다. 침묵은 죄악이다”라는 글을 쓰기도 했고, 유신헌법이 통과된 뒤 야권 인사들에 대한 도청과 우편물 검열 등 탄압이 강화되자 송광사로 내려가 뒷산에 불일암을 지었다고 법흥 스님은 전했다.

송광사 주지 무상 스님은 추모사를 통해 “예전에 법정 스님께서 야단치고 나무라실 때는 ‘이 정도 일은 이해하실 수 있을 텐데 왜 저렇게까지 하실까’ 의아했다”면서 “돌이켜보면 한 말씀 한 말씀이 인생에 큰 도움되는 것이었는데 말씀을 제대로 간직하고 실천하지 못해 후회가 크다”고 말했다.

법정 스님 맏상좌이자 문도 대표인 덕조 스님은 “스님은 꽃 피는 아름다운 봄날을 좋아하셨다. 봄이 와서 꽃이 피는 게 아니라 꽃이 피니 봄이 오는 거라 하셨다. 가시기 전날 눈이 많이 내려 매화를 보러 남쪽에 가시고 싶어 하셨는데 꽃향기를 좇아서 떠나신 것 같다”고 전했다.

평생 무소유의 삶을 산 법정 스님은 2010년 3월11일 자신이 창건한 길상사에서 법랍 55세, 세수 78세로 입적했다. /디지털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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