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혁신이 피곤하다

2007년 전세계가 혁신의 물결에 휩싸여 있다. 혁신의 개념은 처음에는 주로 R&D 분야에서 사용됐지만 점차 기업활동 전반으로 확산됐고 이제는 정부ㆍ지방자치단체 등 공공부문에까지 적용되고 있다. 급기야 혁신을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조직 내에 체화하고 생활화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들린다. 혁신(革新)이란 말 그대로 ‘가죽을 벗겨 새롭게 하는 일’이다. 그런데 날마다 가죽을 벗기라고 몰아치니 못 견딜 노릇이다. 민간 기업에서라면 혁신의 구호 속에 명예퇴직과 구조조정이 이미 일상화되다 보니 그저 묵묵히 고통을 견디거나 불만을 삭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고용이 비교적 안정된 공무원 사회에서는 혁신의 시작과 더불어 ‘혁신 피로’라는 부작용이 관찰된다.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지고 시작했다고 해도 모든 변화에는 필연적으로 저항이 따를 수밖에 없다. 혁신 전문가들도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현 상태에 대한 위기감을 조성한 후 혁신하지 않으면 안 되는 문화를 만들 것을 주문한다. 그리고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혁신 관리를 강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혁신 성공률은 전체적으로 16%에 불과하다고 한다. 최근 부쩍 강해진 혁신에 대한 저항과 피로는 얼마 전 지인의 선물로 읽은 ‘말과 대화하는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한두 살 난 망아지나 야생마를 길들이면서 고삐와 굴레를 씌우고 안장을 얹는 작업은 보통 한달 이상 걸리는 매우 위험한 작업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자유롭게 들판을 뛰놀던 말 입장에서는 갑작스런 구속과 부하가 두려울 뿐만 아니라 괴로울 것이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야성을 간직한 말이라면 이 ‘길들임’에 생사를 걸고 저항할 것이 당연하고 그 과정에서 말 조련사가 불구가 되거나 심지어 사망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그런데 말과 대화하는 사람, 그리고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의 말 조련사로도 알려진 만티 로버트라는 미국인은 이 작업을 단 30분 만에 그것도 즐겁게 말의 협조하에 해낸다. 6천년간 내려온 말 조련법에 일대 혁신이 아닐 수 없다. 그가 실제로 애리조나 사막에서 야생마 무리 중에 무작위로 한 마리를 선택하여 조련하는 모습이 BBC와 PBS TV를 통해 방영되면서 그는 일약 전세계적인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로버트의 조련법은 인간과 말 사이의 신뢰 구축에서 출발한다. 말에 특정 행동을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말 스스로 경계를 풀고 순응할 수 있도록 참고 기다리는 것이 그의 비법(秘法)이다. 비법이라는 것이 늘 그렇듯이 듣고 보면 의외로 싱거운 느낌까지 든다. 그는 상호 간의 믿음을 기반으로 말의 언어로 이야기하고, 헤치지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 확신하게 하고, 옳은 행동을 할 때까지 묵묵히 기다렸다가 칭찬과 보상을 하는 방법을 취한다. 그런데 전통적인 말 조련법은 이와는 극단적으로 다르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말 조련의 정석은 인간이 정한 언어로 ‘내 지시를 따르라. 그렇지 않으면 너에게 고통을 주겠다’는 방식이다. 말이 굴레 씌우기에 저항하거나 사람의 지시를 거부하면 고함을 지르고 채찍으로 때리라고 가르친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혁신과정 관리법은 전통적인 말 조련법과 너무나 닮아 있다. 물론 이성과 합리의 대명사인 인간을 말에 그리고 조직의 혁신을 말 조련에 비유하는 것은 비약일 수도 있다. 하지만 협력할 것이라는 믿음, 신뢰의 형성, 기다림과 옳은 일에 대한 보상이라는 만티 로버트의 학습 철학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의 방법은 이미 세계 유수 기업의 리더십 개발 과정과 가족문제, 아동 학습, 문제아동 치료 등에 널리 활용돼 우수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혁신을 추진하고 있는 기업은 만티 로버트의 말을 한번쯤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말이 어떤 일을 하게 하는 조련사는 위대한 조련사가 아니다. 위대한 조련사는 말이 어떤 일을 하고 싶어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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