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대충대충으론 선진국 안된다/권순원 덕성여대 교수·경박(특별기고)

경제의 양적 성장이 우선시되던 시기에는 아무리 부분이 실패하더라도 전체가 잘 돌아가면 큰 문제가 될 수 없었다. 대충대충해도 큰 것만 잘 챙기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경제 각 부분의 질적 고도화가 요구되는 경제발전의 성숙기에는 상황이 달라진다. 각 부분의 내용이 알차게 영글어야 하고 부분간 조화있는 균형발전이 중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대충해서 넘어가려고 할 경우 부분은 물론 전체까지 망칠 위험이 있다. 따라서 좋든 나쁘든 이 시기에는 시너지 효과가 중요성을 지니게 된다.이제 성수대교가 복구되었다. 해외에서 하는 공사처럼 외국인의 철저한 감리를 거쳐 완벽하게 시공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국내외 언론을 비롯하여 국민적 관심과 감시의 따가운 눈총도 철저한 시공에 한몫을 점하였으리라. 그런데 같은 회사가 최근 완공한 모대학 건물의 경우 이야기가 달라, 적잖은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예외적인 경우라고 믿고 싶지만 일반의 관심이 비껴가는 영역이라 그런지 대충대충의 편린이 엿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의 시설관리 책임자로부터 30여건에 달하는 하자보수를 요청받고 건설회사측에서는 「눈에 잘 안 보이는 곳」이니까 하며 후미진 장소에는 손도 대지 않은 채 보수공사를 마쳤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이것이 바로 대충대충의 정신이 만들어 낸 무책임과 불성실의 작은 표본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필자도 그랬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남의 집에 세들어 사는 사람들이 간단하게 집을 한두번 둘러본 다음 거금을 걸고 전세계약금 한장만을 믿고 입주하게 된다. 그후 살다보면 여기저기 보수할 곳이 눈에 띈다. 양식있는 집주인이라도 만나면 그래도 몇군데 손을 봐주겠지만 보통 「계약할 때 명시되지 않았으니 해줄 수 없다」는 퉁명스런 대답을 듣기 일쑤다. 반면 미국의 경우 입주전 계약서 작성에 철저를 기한다. 커튼이나 보일러에 채워진 기름은 물론 원상태 그대로 있어야 하고 만일 벽에 못자국 하나라도 있으면 전문가의 감식을 거쳐 예치금에서 그 비용만큼을 공제하고 돌려준다. 우리나라 식으로 남의 집을 험하게 사용하는 경우 잘못하면 추가로 비용을 부담할 수도 있다. 모든 것이 임대계약서에 구체적으로 명기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문서를 통하여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고 있기에 당사자들은 규정을 준수하면 되니까 분쟁의 소지도 없다. 업무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서구에서는 아무리 하급직이라도 직무 내용기술서(Job Description)에 의해 특정인이 처리해야 할 업무 내용이 사전에 구체적으로 제시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개인별 직무내용 기술서가 없는 것 같다. 전무 상무같은 고위직이라 해도 이들은 사장을 보좌하여 특정분야 업무의 책임을 지는 등 큰 테두리만 정해져 있을 뿐 권한과 책임의 소재가 확연하게 규정되지 않고 있는 경우가 많다. 과장이나 대리 수준으로 가면 업무영역이 더욱 모호해진다. 더욱이 빈번한 인사이동으로 담당업무가 계속 바뀌다 보니 사건이 발생하더라도 책임소재가 불분명해진다. 공직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닌 것같다. 이와같이 책임 소재가 분명하지 않은 사회에서는 대충 맡은 일을 대충대충 해치울 가능성이 높아지고 따라서 부실공사가 많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나 똑같은 회사가 똑같은 공사를 해외에서 맡게 되면 사정은 달라진다. 계약에서 설계 시공 감리에 이르기까지 대충대충이 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진정 우리가 세계화 노력을 통하여 성취해야 할 규범 제1호는 해외에서 하는 그대로 국내에서 시공하거나 업무를 추진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대충대충 대신 철두철미의 장인정신이 자리를 잡아나가도록 제도적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고속전철이나 인천국제공항 건설 등 굵직굵직한 국책사업들을 둘러싸고 잡음이 계속 들려오고 있다. 국민들은 이들 공사가 성수대교 복구처럼 완벽하게 추진되길 희구한다. 그러나 감리를 맡고 있는 외국회사들로부터 들려오는 이야기는 결코 낙관적이지 못하다. 이제부터는 대충대충 넘어가려는 수작을 통하여 국민과 국가에 누를 끼치는 죄인들을 국민들은 더이상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은 최근 「패스파인더」호를 무사히 화성 표면에 안착시킨 바 있다. 그 이면에는 철두철미하게 자기 일에 몰두해온 전문가 집단이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들이야말로 「팍스 아메리카나」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의 소중한 자산이다. 우리도 21세기 선진국을 이땅에 건설하려면 맡은 바 소임에 철저를 기하면서 책임을 질 줄 아는 전문가 집단이 필요하다. 지금이야말로 「무슨 일을 하든 철두철미하게 하라」(whatever you do, do it thoroughly)는 서양격언을 되새겨 볼 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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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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