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우리시대의 문화 코드와 정치

어제의 정치가 시중의 민심을 살피는 일이었다면 오늘의 정치의 우선과제는 시대의 문화적 코드를 읽는 일이다. 그런데 정치가 시대의 문화적 분위기나 살피는 일이 되었다고 깎아 내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정치가 문화가 되었다고 해서 정치가 세상의 이해관심을 살피는 일이 아니라 부박한 분위기에 편승하는 작위가 되었다는 뜻은 전연 아니기 때문이다. 정치가 대변해야할 국민의 장기적인 이해와 삶의 형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수시로 바뀌는 여론이 있을 뿐이라면 그건 나쁜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바로 그러한 변덕스런 여론이 자신의 이해를 표현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널뛰듯 하는 주가와 금융시장의 동향은 경제의 이해를 대변하지 않는다. 경제에는 추세와 흐름이 있을 뿐이라는 주장은 새삼스런 것이 아니다. 상품을 사는 것이 아니라 변덕스런 라이프스타일과 취향을 사는 것이라는 것은 적어도 신경제의 상식이다. 그런데 정치만 그런 변화에 비껴 서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정치인이 스타가 되고 유권자를 팬처럼 만나는 것은 정치를 진지하지 못한 처사가 아니다.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정치의 생리 자체가 그렇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탄핵무효 국민행동”의 촛불집회를 당국이 정치집회로 규정하고 이를 불법이니 금지하겠다고 한 것은 유감이다. 결국 이런 당국의 조처에 반응하여 촛불집회는 문화집회로 바꾸겠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다양한 표현의 형식을 찾음으로써 정치가 시민사회에 열릴 수 있도록 하는 민주주의의 성숙을 가로막을 위험이 있다. 이미 우리는 다양한 문화적 형식을 통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참여한다. 네티즌의 만화와 패러디 사진에서부터 진지한 정치적 토론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우리 시대의 정치적 표현이다. 정치가 존재하는 곳이 특별히 격리되지 않을 때 민주주의는 활성화된다. 좋은 정치란 정치가 누구에게나 어떤 형식으로나 존재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발아하기 때문이다. <서동진 (문화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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