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인지부조화 정치

[데스크 칼럼] 인지부조화(認知不調和) 정치 홍현종 hjhong@sed.co.kr "법은 보호할 가치가 있는 정조만 보호한다." 지난 1960년대 댄스홀에서 만난 여성 70여명을 농락한 희대의 카사노바 이른바 박민수 사건. 춤바람 여성들의 피해 사실을 법이 인정하지 않은 당시 사법부의 판결문은 지금도 인구에 회자되는 유명 문구다. 그때 일만큼이나 매우 인상적인 판결문 하나가 눈길을 끈다. 전군표 전(前) 국세청장의 뇌물수수 혐의에 대한 최근 부산지법의 판결. 혐의 사실을 전면 부인하는 피고인의 상태를 심리학적으로 분석한 판결문은 거짓과 진실이 혼돈되는 사고구조의 틀을 흥미롭게 읽어내고 있다. 인사(人事)로부터 퍼져가는 파열음 인지부조화(認知不調和). 왜곡한 과거 기억을 확신으로 무장해 자신이 거짓 진술을 한다는 것을 인식 못하도록 자기암시를 하고 사실과 다르게 주장하는 심리 상태다. "내 기억은 내가 그것을 했다. 그러나 내 자존심은 그것을 내가 했을 리 없다." 재판부는 "기억이 자존심에 굴복한다"는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말을 인용해 피고가 자신의 왜곡한 기억으로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는 해석을 판결 근거에 담았다. 기억이 자존심에 굴복한 현상이 정치에서 반영된 결과물은 한국 정치 부패 구조의 전형적 한 패턴으로 등장한다. 근대화의 과정에서 굳어진 그 구태(舊態)의 반작용으로 등장한 노무현 정부. 그러나 임기 내내 정권은 죽을 쑤고 혼란의 정정(政情)에 편승, 10년 만에 보수 정부가 다시 들어섰다. 여러 도덕적 의혹을 안고서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시작부터 심상찮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 사람 쓰기에서부터 문제가 터졌다. 당장 정권을 이끌 새 내각 구성원들이 청문회를 통해 드러낸 면면은 기억이 자존심에 무릎 꿇은 사례들의 속출이다. 국민들 보기에도 '도를 넘은' 부자 내각 인사가 여론의 질타를 받는 상황에서 안상수 집권당 원내 대표를 필두로 여권 인사들이 쏟아내는 과거 인사 정리 발언은 정치적 저의(底意)가 담긴, 또 한번의 자신들에게 편한 과거 기억과의 단절이다. 명분과 실리를 조절한 타당한 인사와는 거리가 먼 '매카시즘적 싹쓸이' 인사가 그들이 입만 열면 비난하던 노무현 정권 코드 인사와 어떤 점이 다른지, 정권교체 때 마다 '판 뒤엎기'가 역사 진화의 측면에서 과연 어떤 정당성을 갖는지를 집권층은 먼저 국민들에게 납득시키고 칼을 뽑아 들어야 한다. 인지부조화란 기본적으로 취약한 도덕적 기반이 출발점이다. 그리고 그것은 일종의 습관적 행태다. 우리가 근심하는 바는 부와 명예 등 집권층의 기득권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만드는 과정에서 행해진 방법과 수단의 부적절성, 그리고 그 굴절된 마인드가 정치라는 통치 형태로 투사돼 나타날 결과에 대한 우려다. 기본적으로 살며 익숙해진 행태적 관성은 환경이 달라진다고 갑자기 바뀌어질 문제가 아니다. 오로지 성장 만능의 논리만을 외치며 제도를 자기들 이해에 따라 주무르려는 관성이 정권적 차원으로 이어진다면 새 정부의 생명력이 전 정권보다 길 것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운하를 판다고 새벽 출근을 하고 영어 몰입 교육을 한다고 해결될 사안이 결코 아니다. 정권 출범 초가 이토록 시끄러운, 그래서 대중 지지도가 한두 달 만에 급전직하한 정부도 군사 정권 시절을 빼면 결코 없던 일이다. 전 정권의 실패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던 국민들 사이에서도 새 정부와 그 구성원들의 잠재된 인지부조화적 성향에 대해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고 있음이 반영된 결과다. 유전(流轉)하는 여론에 정권 긴장해야 여론은 유전(流轉)함이 본성이다. 전임자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고 현 정권에 여론이 등을 돌려버리는 일은 생각보다 한순간일 수 있다. 우선 곳간이 두둑해지기를 바라는 국민들의 다급한 선택이었지만 정부가 특히 인사와 정책에서 그들 자신을 포함한 기득권층 입맛으로만 독선적으로 움직인다면 민심은 또다시 의외의 국면에서 방향을 틀 가능성은 언제라도 상존한다. 앞뒤가 안 맞는 후진적 인지부조화성 사건들이 정권 주변에서 또다시 줄을 잇는 상황을 그저 넘길 국민들이 아니라는 사실, 집권층의 선배 정치인들이 10여년 전 이미 쓰리게 경험했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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