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화 폭락' 美개입 가능성 희박
유로화의 시련이 끊이질 않고 있다. 미국ㆍ유럽ㆍ일본 중앙은행들이 함께 유로화 부양을 위해 사상 처음 시장개입에 나선 지난달 22일 유로화 환율은 1유로당 0.87달러 수준.
그로부터 불과 한달여 만인 25일(현지시간), 뉴욕 외환시장에서 유로는 0.82달러대로 떨어졌다. 지난해 초 출범한 이래 무려 30%의 폭락이다. 시장이 일단 등을 돌린 상황이어서 기력을 회복할 조짐도 보이질 않고 있는 실정이다.
어려움에 빠진 것을 유로화 뿐이 아니다. 필리핀, 타이 등 동남아시아 국가 통화들도 발판을 찾지 못한 채 곤두박질치고 있다.
해외 M&A·부양 공조체제 붕괴등 원인
지역정세 흔들 동남아 통화도 사상 최저
지역 정세 불안으로 해외 자금이 빠른 속도로 빠져나가고 있어,바닥이 보이지 않는 추락이 이어지고 있는 것. 결국 확산되는 통화 불안 속에 외환시장의 자금은 미 달러화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유로화, 왜 자꾸 떨어지나
사상 처음으로 1유로당 0.83달러가 붕괴한 25일, 외환시장에서는 네덜란드의 ING 금융그룹이 유로 폭락의 주범(主犯)이라는 소문이 떠돌았다. ING가 미 보험회사인 애트나의 인수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상당액의 달러화를 매집, 유로 하락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
유럽 기업들의 공격적인 해외기업 인수합병(M&A)은 최근 유로화 하락의 중요한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골드만 삭스에 따르면 올 상반기중 유럽이 북미기업들을 인수하는데 든 금액은 총 1,740억달러로, 북미 기업의 유럽 업체 인수액 570억달러보다 1,170억달러나 웃돈다.
그 가운데 현금으로 740억달러 가량이 유럽에서 빠져나갔다고 볼 때 유로화 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보다 직접적인 원인은 유로화 부양을 위한 공조체제가 허물어졌다는 점이다. 캐나다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 20개국(G20)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 회담에서 저유로 대책이 논의될 것이라던 시장의 당초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고, 미국은 `강한 달러'정책만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지난달 이래 시장에서 유로화를 지탱해 온 각국의 시장 개입 가능성은 날로 희박해지는 실정이다.
◇유로화, 어디가 바닥인가
전문가들은 미국 대선이 2주 가량 남은 상황에서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유로화에 대한 시장 개입을 단행에 나서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지난달 이뤄진 것과 같은 통화 부양책이 나오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일부 전문가들은 유로화 가치가 0.80달러를 무너뜨리고 0.75달러까지 주저앉을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일부에선 해외기업 인수를 주도해 온 유럽계 통신업체들이 차세대 이동전화 사업면허 획득을 위해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는 바람에 M&A 시장에서 고삐를 늦출 수밖에 없어, 유럽으로부터의 자금 이탈 속도가 완화될 것이란 분석도 제기된다. 하지만 일단 시작된 흐름이 금새 멈추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흔들리는 동남아, 당분간은 불안할 듯
달러에 대해 맥을 못추고 있는 것은 유로화뿐이 아니다. 일본 엔화는 달러당 108엔대에서 등락을 거듭, 연초에 비하면 상당한 약세에 머물고 있고, 특히 동남아 각국의 통화불안은 극심한 지경.
조셉 에스트라다 대통령의 부패 스캔들로 발칵 뒤집힌 필리핀의 페소화는 26일 처음으로 달러당 50페소를 돌파, 50.30페소를 기록하며 25일에 이어 사상 최저치를 경신했다.
이번 주들어 무려 8%나 하락한 셈. 타이 바트화도 중앙은행의 시장 개입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지난 25일 한때 달러당 44바트를 넘어서며 지난 98년 3월 이래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국제 외환시장에서 요지부동인 달러 강세와 중동사태에서 비롯된 유가 불안, 세계 경제의 둔화조짐, 그리고 국지적인 지역 정세 불안이 아시아 통화를 끌어내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입력시간 2000/10/26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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