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남의 한 초등학교 1학년 자녀를 둔 장모(38)씨는 학부모 모임에서 좋은 브런치 장소를 찾아내거나 브런치 예약을 도맡아 하는 일명 '예약 담당'이다. 학교 주변의 대형 커피전문점이나 레스토랑은 늘 북적대기 때문에 모임 시간이 정해지면 누군가 맡아서 신속히 예약해야 학교에서 가까운 장소에서 하교 시간까지 편하게 모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바쁜 아침 아이들 등교시키느라 식사를 거르는 경우가 많은 엄마들이 아이들 등교가 끝난 후 오전 9시부터 11시 사이 학교 인근 카페 등에 모여 아침 겸 점심으로 브런치를 즐기는 일은 이제 대한민국 학교 앞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으로 자리잡았다.
서구의 브런치 문화가 교육열 높은 한국의 '맹모'들과 만나 새로운 시장과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는 셈이다.
엄마들 사이에서 이처럼 브런치 모임이 활발해진 것은 '엄마의 정보력'이 자녀의 학교 생활과 성적을 좌우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다양한 교육 정보를 공유하려는 '맹모들'의 참여가 높아지고 있어서다.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의 경우 엄마들의 유대감이 아이들의 친구 모임으로 곧바로 연결되는데다 학교나 학원ㆍ트렌드 등을 수집하기 위해 의무적으로라도 그런 모임에 빠지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엄마들은 모여서 학교 안팎에서 일어난 일과 학원 트렌드는 물론 최근 유행하는 패션 등 각종 신변잡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보를 나눈다.
중학교 2학년과 초등학교 5학년을 자녀를 둔 중계동의 한지연(40ㆍ가명)씨는 "학원 엄마들 모임, 저학년 때 엄마들 모임, 현재 같은 반 엄마들 모임 등 아이들이 커갈수록 소속 모임이 많아지다 보니 일주일에 많게는 3~4번씩 브런치 모임이 몰릴 때가 있어 이를 쫓아다니기에도 바쁠 정도"라고 털어놓았다.
'맹모들' 덕분에 초ㆍ중ㆍ고등학교 인근 커피전문점은 상대적으로 한산한 영업시간대였던 오전 매출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게 나타나고 있다. 학교 앞에 위치한 패스트푸드, 베이커리ㆍ커피전문점ㆍ패밀리레스토랑 등에서 맹모들이 큰손으로 떠오르면서 외식업계는 앞다퉈 브런치 메뉴를 선보이고 학부모 대상 서비스를 도입하는 등 이들을 겨냥한 마케팅이 한창이다.
베이커리 브랜드 뚜레쥬르 매장 가운데 맹모들의 브런치 세계를 쉽게 목격할 수 있는 대표적인 곳은 서울 중구 쌍림동에 위치한 CJ제일제당센터 1층 라뜰리에 뚜레쥬르다. 길 건너 충무초교ㆍ덕수중 등이 몰려 있어 오전10시~오후1시 학부모들의 발길이 가장 잦다. 덕분에 이 매장의 오전시간대 매출은 하루 매출 가운데 25%를 차지, 다른 매장 평균치(19%)를 훨씬 웃돈다.
이 지역 맹모들의 '핫 플레이스'로 떠오른 라뜰리에 뚜레쥬르는 이에 맞춰 다른 매장에는 없는 치즈 머쉬룸 오믈렛, 바나나 프렌치 토스트, 에그베네딕트 등 5종의 브런치 메뉴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주말에는 브런치 메뉴를 주문하고 5,000원을 더 지불하면 유럽빵 12종을 원하는 만큼 제공하는 '브레드 뷔페'도 선보인다.
서울의 유명한 사립고등학교 맞은 편에 위치한 커피전문점 탐앤탐스 ㅅ점의 경우 오전9시~오후2시까지의 매출 비중이 전체의 30%에 달한다. 스타벅스는 특히 학교와 학원ㆍ아파트 단지가 밀집해 있는 대치ㆍ도곡ㆍ잠실 지역 매장이 학부모 모임이 많은 곳이다. 스타벅스 관계자는 "주부 고객층의 방문으로 학교 등교와 하교 사이 시간대에 샌드위치 등 브런치 메뉴와 케이크 매출이 오피스 타운 매장에 비해 평균 2~3배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스타벅스는 학교 주변 매장에서 트렌드에 민감한 고객층의 특성을 반영해 신제품 소개 샘플링 활동을 수시로 전개하는가 하면 주부 고객층의 참석률이 높은 커피 세미나 같은 문화 행사를 개최하는 등 지역 사랑방 역할까지 톡톡히 해내고 있다.
서울의 또 다른 핵심 교육 상권인 목동에 위치한 카페베네 양천구청점과 목동파리공원점은 오전 시간대 브런치 메뉴인 허니브레드와 와플 매출이 다른 지역에 비해 20~30% 높다.
일반적으로 점심 및 저녁 식사시간에만 붐볐던 패밀리 레스토랑은 최근 브런치맘의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해 이른 아침부터 영업을 시작하는 등 맹모들의 활약이 외식업계의 영업 환경까지 바꿔놓고 있다. 블랙스미스는 오전 9시부터 11시30분까지 브런치 메뉴 2종을 선보이고 있는데 특히 인근에 청담초중고ㆍ경기고ㆍ영동고 등이 몰려 있는 청담점의 경우 유아교육 전공 교사를 상주시키며 매장 2층에 '영재놀이방'을 운영하고 있다. 블랙스미스 관계자는 "브런치 메뉴 강화를 위해 최근 출시한 '슈퍼런치 세트'는 식사에다 콘스프ㆍ커피 등을 함께 즐길 수 있어 실속파 주부들에게 인기"라며 "오전 브런치 메뉴 매출 중 학부모 고객의 비율이 80%에 달한다"고 말했다.
차이나팩토리는 매년 늘어나는 주부 모임을 위해 올해는 봄학기가 시작된 3월부터 평일 낮12시 이전 입점 고객을 대상으로 30% 할인해주는 '얼리버드' 이벤트를 시행해오고 있다.
일부 커피 전문점은 큰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어린 동생을 동반하는 주부 고객이 많아지자 이들을 배려해 인테리어도 변경했다. 학교 주변의 던킨도너츠 매장은 입구ㆍ계단 등에 경사면을 설치해 유모차가 드나들기 쉽게 만들었다. 학교 주변에 위치한 파스쿠찌도 오전 시간 학부모 모임으로 커피류 매출이 다른 시간대보다 15%가량 늘자 이들이 동반하는 어린 자녀를 위해 아기전용의자를 배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