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가면과 진실

“최근 수주 실적이 상당히 좋아지고 있다. 주가도 오를 것이다. 하지만 우리 회사에 투자해 보라고 권유하지는 못하겠다. 현재 보여지는 실적보다도 알려지면 안되는 것들이 많다.” 국내 유수의 상장기업체 재무담당 임원과 나눴던 말이다. `보여지는 것과 실재는 차이가 있다`는 뜻이다. 참여정부의 출범 직전인 지난 2월17일 검찰의 전격적인 압수수색으로 시작된 SK사태가 만 2개월을 넘기고도 여전히 예측불허 양상이다. 이 사태가 숨가쁘게 진행되는 동안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구속수감됐으며, 그룹의 지주회사격인 SK㈜는 자신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소버린이란 외국자본을 1대주주로 맞이하게 됐다. SK사태를 촉발시킨 SK글로벌의 추가부실 규모는 현재로선 수조원대라는 정도만 추정될뿐 앞자리 숫자조차 가늠되지 않는다. 부실규모에 따라선 그룹 전체의 명운이 갈릴 수도 있다. 가장 최근엔 SK㈜ 출자회사인 SK해운이 이미 2,400여억원에 달하는 자본잠식 상태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SK해운의 부실엔 계열사(SK글로벌)에 대한 불법지원이 상당히 커다란 비중을 차지했던 것으로 회계법인의 실사가 시작되자마자 곧 바로 드러났다. 한국을 바라보는 외국자본들은 SK사태가 진행되는 과정 과정마다 “재계 3위의 거대그룹이 저 모양이니 나머지 그룹들은 더 이상 말해 무엇하느냐”는 자세로 돌아앉는 모습이다. 한보그룹, 대우그룹, 현대그룹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들로서는 국내 기업들의 존망이 어찌 그리도 닮은 꼴들인가 싶을 정도다. 이번에도 계열사간 불법거래와 회계분식, 관련자들의 자의적이며 편의적인 해석 등등이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럴싸한 겉 모습을 들춰보면 볼수록 잘못된 경영관행이 뿌리깊게 퍼져있다는 점만 확인하게 된다. 검찰의 압수수색이후 SK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질 때 일부에선 `검찰이 경제메카니즘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며 볼멘소리를 했지만 결과적으로 `가면 속에 감춰진 진실`은 입을 다물기 힘들 정도의 중증이었다. 기업을 지근거리에서 접촉해온 입장에선 SK사태가 그룹 해체로 이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희망이다. 동시에 이참에 제발 기업들의 `화장발`이 지워지거나, 옅어지는 시간이 좀 더 당겨졌으면 하는 염원이다. <김형기(산업부 차장) kki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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