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남북 장관급회담을 보며

지난 2일 종결된 20차 남북 장관급회담은 지난해 북한 미사일 발사 이후 7개월 동안 중단된 남북 고위급 회담이 재개됐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또한 북한의 핵실험 강행과 6자회담 재개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앞으로 남북협상이 어떻게 진행될지를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에서 지대한 관심이 쏠린 회담이었다. 남북은 적십자회담ㆍ경제협력추진위원회 일정 등 6개 항에 합의했으나 이번 협상 결과는 정부 평가와 달리 국민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회담의 문제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새로운 합의가 없으며 합의 내용도 구체성을 띤 것이 별로 없다. 이산가족 상봉, 철도 연결, 경공업 지원 등은 과거 북한에 의해 일방적으로 연기된 사업으로 새로운 것이 아니며 그것도 구체적 내용 없이 추후 회담일정만 합의한 정도다. 지금 국민이 가장 관심을 갖는 사안은 미사일과 핵에서 나오는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다. 정부가 참가국들의 다양한 이해관계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도 모르는 6자회담에만 우리의 안보를 맡긴다면 직무 태만이다. 많은 국민은 경제적 지원에 대한 대가로 최소한 우리의 안보에 대한 어떤 보장을 북한으로부터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남북이 더 이상 전쟁을 하지 말고 평화적으로 한 공동체를 이뤄 살자고 하는 비전에 반대하는 국민은 그리 많지 않다. 문제는 비전 실현을 위한 정부의 중간목표와 정책수단이 일반국민의 상식과 거리가 멀다는 점이다. 지난해까지 4년간 참여정부가 북한에 제공한 경제지원은 쌀 160만톤, 비료 130만톤 등 약 1조여원에 달하며 그 액수는 과거 국민의 정부 5년간 정부 지원액인 6,000억여원의 두 배에 약간 못 미치는 수치다. 또한 과거 몇 년간 정부가 제공한 유무상 지원액은 중국의 지원액보다 더 큰 규모이다. 이러한 경제지원을 제공하고도 핵무기의 위험에 떨어야 하며 국군포로ㆍ납북자는 하나도 데려오지 못하는 것이 정상인지 정부에 묻고 싶다. 회담의 다른 문제는 밀실협상의 가능성이다. 공동 합의문에서는 쌀 및 비료 지원이 언급되지 않았다. 장관의 말 바꾸기는 해프닝이라고 치고 정부 발표대로 이면합의는 없었다고 믿고 싶지만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 대통령은 6자회담이 타결되자마자 쌀ㆍ비료 지원 재개는 남북한 사이에서 별도로 할 수 있다고 했으며, 연초 6자회담 2ㆍ13합의 이전 쌀ㆍ비료 지원의 필요성을 말한 통일부 장관은 쌀 차관 일부 혹은 전부를 ‘인도적으로’(무상을 의미) 할지는 북한의 태도에 달려 있으며 인도적 지원은 정치적 상황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하고 싶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북한이 파종기와 춘궁기를 앞두고 비료와 쌀을 필요로 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번 회담에서 쌀ㆍ비료 지원에 대한 깊은 논의가 없었다니 논리적으로 언뜻 수긍이 가지 않는다. 회담결과 발표에서 정부는 북한이 요구하는 수준이 쌀 40만톤과 비료 30만톤이라고 했다. 정부가 올해 남북협력기금 예산에 쌀 차관 40만톤(1,500억여원)과 비료 30만톤(1,400억여원)을 책정한 것과 정확히 일치하는 규모이다. 밀실협상은 19세기 후반 유럽 외교의 관행이었다. 독일의 비스마르크는 1862년 총리에 취임해 군사력을 키우는 한편 세력균형을 목적으로 전 유럽에 비밀조약과 비밀협상을 전파시킨 인물이다. 그러나 적절한 견제와 통제를 받지 않은 밀실외교는 세력균형은 물론 결국 유럽의 안전보장체제인 비인체제를 붕괴시키고 이후 제1차 세계대전으로 발전했다. 이제 현정부의 임기는 1년도 남지 않았다. 정부는 다수 국민이 수긍할 수 있는 상식선에서 남북관계를 처리하기 바란다. 우리가 상식을 믿는 것은 독선이 되기 쉬운 관념론적 믿음과 달리 그것이 목적으로서나 수단으로서나 건강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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