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4월 이야기'

4월 도쿄 근교는 벚꽃으로 온통 흰빛이다. 이와이 순지(岩井俊二) 감독은 맑은 햇살을 타고 눈처럼 내려와 품에 안기는 꽃잎을 보며 또 하나의 사랑을 생각했다. 그 사랑은 눈보라 휘날리는 겨울 북쪽 작은 마을의 ‘러브 레터’(1995년)처럼 추억과 어긋난 인연의 안타까움이 아니다. 그 사랑은 막 피기 시작하는 벚꽃처럼 작고 수줍지만 ‘그 사랑이야말로 인간의 삶에 가장 강한 동기’임을 말해준다.‘4월 이야기’(1998년 작품)는 바로 그 ‘짝사랑’이자 ‘첫사랑’의 이야기이다. 사랑은 환상이나 상상이 아니라 ‘기적’을 만든다. 우연히 한번 본 남자 선배를 만나기 위해 홋가이도에 사는 우즈키(마츠 다카코)라는 여학생은 6개월간 시험 공부에 매달려, 선배가 다니다는 도쿄 근교 무사시노(武藏野) 대학에 입학하는 ‘기적’을 이룬다. 영화는 기적을 가져온 사랑의 만남을 섬세하고 조심스럽게 준비한다. 이와이 순지 영화의 사랑은 격정적이거나 뜨겁지 않다. 우즈키가 책을 보며 혼자 삼키듯 억제함으로써 오히려 그 힘을 강하게 만든다. 대신 작은 일상과 행동 변화로 조금씩 다가선다. 싱그러운 햇살 아래 순정만화를 읽듯 그것을 지켜보다 보면, 어느새 사랑은 두근거리며 다가서고, 순수의 떨림이 가슴으로 느껴진다. 아름다운 자연과 풍경은 그 느낌의 또 다른 이미지이다. 시골 소녀의 첫 대학생활의 어색함과 즐거움과 쑥스러움이 일상이라면, 초록 들판을 지나고 비를 맞으며, 선배가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책방에 들러보는 일은 사랑을 찾으려는 그의 마음이다. 그것이 발걸음과 자전거의 속도에 실린다. 기대와 설레임으로 가는 길은 경쾌하고 가볍고, 만나지 못하고 돌아오는 길은 재미없는 사무라이 영화를 보듯, 플라이 낚시 연습을 위해 허공에 낚싯줄을 던지듯 느리고 지루하다. ‘4월 이야기’는 우즈키가 마침내 비오는 날 그를 만나 서로를 확인하는 기쁨으로 끝을 낸다. 첫사랑은 이렇게 봄비를 맞으며 시작되고, 4월의 작은 이야기(67분)도 끝이 난다. 8일 개봉. 오락성 ★★★★ 예술성★★★★ 이대현기자입력시간 2000/04/06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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