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라이프

사랑과 지성의 중세풍 도시 그곳에서 진정 행복했노라

독일 하이델베르크<br>하룻밤 만에 지은 엘리자베스 문<br>핑크빛 아름다운 하이델베르크 古城 애틋한 전설 간직<br>괴테·칸트가 걸었던 철학자의 길따라 사색·감상에 젖고<br>아기자기한 집들은 격조 높은 멋 풍겨

하이델베르크 고성에서 시가지를 내려다보면 이 지역 특유의 분홍빛 사암으로 지은 옛 건물들을 비롯해 이들과 조화를 이루는 붉은색 지붕들이 경쾌하게 펼쳐진다. 오른편에 보이는 카를 테오도르다리는 칸트가 매일 산책을 다닌 산 중턱의 '철학자의 길'로 이어진다.

세계에서 가장 큰 높이 9m짜리 와인통인 하이델베르크 툰(tun).

프리드리히 5세가 하룻밤 만에 지은 '엘리자베스의 문'.

하이델베르크 고성의 프리드리히궁과 오트하인리히궁.

하이델베르크에서 가장 아름다운 민가인 '하우스 줌 리터'.

독일 남서부 바덴뷔르템베르크주에 위치한 소도시 하이델베르크. 이곳은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인 하이델베르크대가 둥지를 튼 지성의 도시이자 하이델베르크 고성(古城)이 애틋한 전설을 간직한 사랑의 도시다. 하이델베르크 도심 어디에서든 올려다 보이는 하이델베르크 고성에 오르면 이 지역 특유의 홍조 띤 돌 색깔이 돋보이는 성문을 만나게 된다. 1615년 프리드리히 5세가 동갑내기 왕비 엘리자베스를 위해 세운 문이라 이름도 '엘리자베스 문'이다. 영국의 왕족으로 17세에 독일로 시집 온 엘리자베스 왕비는 고향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으로 자주 눈물을 짓고는 했다. 이를 안타까워한 프리드리히 5세는 거의 매일 파티를 열어 그녀를 웃게 해주려고 애썼다. 왕비가 19세 생일을 맞던 날 왕은 생일날 아침에 눈을 뜬 왕비가 깜짝 놀랄 만한 선물을 준비했다. 그는 "단 하룻밤 만에 성문을 축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인부들은 밤새 숨죽여 돌 쌓는 일부터 세부장식까지 끝마쳤다. 문의 꼭대기에는 '사랑하는 엘리자베스를 위하여'라는 돌에 새긴 남편의 생일 축하카드가 여전히 선명하다. 날림공사라 여길 수도 있으나 건축적 완성도나 세부장식 등을 볼 때 나무랄 데가 없다. 왕비는 크게 기뻐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프리드리히 5세의 사랑은 마냥 동화 속에만 있을 수만은 없었다. 아내를 위한 각종 행사를 계속하다 보니 재정이 악화됐다. 해결책을 모색하던 중 내키지 않았던 보헤미아의 왕위를 받기로 결심했고 이것이 종교전쟁의 절정이었던 1618년 '30년 전쟁'의 시발점이 됐다. 무리한 전쟁에서 패한 프리드리히 5세와 엘리자베스 부부는 네덜란드로 피신해야 했다. 핑크빛이 아름다운 하이델베르크 고성에 닥친 전쟁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1689년 프랑스군이 '상속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쳐들어 왔고 '태양왕' 루이 14세가 성을 장악했다. 고성 안으로 들어서는 대형 성문 위쪽으로 왕권을 상징하는 사자상 2개가 새겨져 있다. 원래 이 사자들 사이에는 독일 왕가를 상징하는 문장이 있었으나 루이 14세의 군대가 이를 뜯어가 버렸다고 한다.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았다. 쓸쓸한 문을 지나는 순간 눈앞에는 '알프스 이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이라는 애칭을 자랑하는 궁이 눈앞에 펼쳐진다. 가장 오래된 궁전은 루프레히트 3세가 1400년께 세운 '루프레히트 궁'이다. 수차례의 파괴와 복원ㆍ확장이 거듭돼 오늘에 이르렀다. '르네상스 건축의 걸작'으로 꼽히는 오트하인리히궁은 1556년에 완공됐는데 각층 창문과 창문 사이 기둥자리에 해당하는 부분에는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다윗과 삼손을 비롯해 고대 신들과 독일의 제후, 선제후들의 조각상으로 장식돼 있다. 당장이라도 손을 내밀며 관광객들에게 말을 건넬 것처럼 사실적인 조각들로 보존 상태도 좋은 편이다. 방문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성은 1607년에 완공된 프리드리히궁이다. 이 궁전 지하층에 세계에서 가장 큰 포도주통이 있기 때문이다. 성내 와인창고에는 무려 4만5,000리터 크기의 와인통이 자그마치 10개나 있다. 당시 세금으로 받았던 와인들을 저장하던 것으로 높이가 9m에 이른다. 양조장이 많던 이 지역은 달콤한 아이스와인이 특산물이다. '대학도시'라는 또 다른 별명에 걸맞게 1386년에 설립된 하이델베르크대는 체코 프라하대, 오스트리아 빈대와 함께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으로 통한다. 하이델베르크 도심을 관통하는 네카어강을 사이에 두고 하이델베르크 고성 맞은 편에 '철학자의 길'이 있다. 철학자 야스퍼스와 칸트ㆍ헤겔ㆍ베버와 괴테 등 하이델베르크대가 배출한 숱한 학자들이 이 길을 걸으며 깨달음을 얻었다. 카를 테오도르 다리에서 산 중턱을 따라 한적한 오솔길이 시작된다. 규칙적인 생활로 유명했던 칸트가 이 다리를 건너는 것을 보고 동네 사람들이 시곗바늘을 정오에 맞췄다는 일화가 전해지는 바로 그곳이다. 도중에 철학자의 뜰도 만날 수 있고 하이델베르크 도심을 내려다보고 고성을 마주볼 수가 있다. 괴테는 "네카어강 다리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세계 어느 곳도 따르지 못한다"고 말했다. 길은 테오도르 호이스 다리에서 끝난다. 사실 산책로 자체는 특별할 것도 없지만 시대의 지성과 같은 길을 걷는다는 뿌듯함이 여행의 벅찬 감동에 여운을 더해준다. 구시가지 도심은 비스마르크광장을 중심으로 뻗은 골목마다 아기자기한 집들이 채우고 있다. 하이델베르크의 관광명소들이 밀집돼 있기에 걸어서 둘러보기에 좋다. 이곳 중심부에 있는 성령교회는 겉은 화려하지만 내부에는 십자가만 있을 뿐이다. 종교개혁 이후 번성한 교회라 다른 유럽식 성당과는 모양새가 좀 다르다. 그 맞은편에는 이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민간 건물인 '하우스 줌 리터'가 있다. 1592년에 프랑스의 샤를 벨리에가 종교박해를 피해 이곳으로 와 지은 르네상스 양식 건물이다. 프랑스적 감각의 장식성이 더해져 민가인데도 무척 화려하다. 각 층 창문 사이에 기둥 대신 인물상이 조각돼 있는데 2층에는 집주인 부부, 3층에는 위용에 찬 기사를 새겼다. 꼭대기 박공 위치에는 종교적 신념까지 새겨두었다. 이 작은 마을은 1899년 출간된 독일의 소설을 기반으로 한 할리우드의 영화 '황태자의 첫사랑'의 촬영지로 더욱 유명해졌다. 황태자 칼 하인리히가 하이델베르크대에서 공부하던 중 하숙집 딸 캐티와 만나 사랑에 빠지고 이별하는 순애보로 이들이 데이트하던 맥줏집 '로텐 옥센' 등지는 지금도 관광객의 순방 코스로 통한다. 지성과 사랑의 도시 하이델베르크의 운치는 괴테의 연인이었던 마리안네 폰 빌레머가 고성의 담벼락에 새긴 이 한 문장으로 압축된다. "진정으로 사랑하고 사랑 받은 나는 이곳에서 행복하였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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