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시력 잃은 권도연씨 "카메라 통해 또 다른 세상을 봐요"

두살때 앓은 '안암'으로 장애<br>4개월전 우연히 상명대' 사진교실'에 참가<br>북한산·공연장 등서 오감 총동원 셔터 눌러

전맹인 권도연(가운데)씨가 렌즈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겠다는 의지로 양종훈(왼쪽) 상명대 교수에게 사진 촬영법을 배우고 있다.

딸 아이의 눈이 이상하다고 느낀 것은 두 돌이 채 안 된 무렵이었다. 장난감을 잘 잡지도 못하고 초점이 흐릿해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기 일쑤였다. 안구 안쪽에 악성 종양이 생긴 ‘안암’ 이라는 의사의 설명은 그야말로 ‘청천벽력’ 이었다. 담당 의사는 3개월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어머니 심순연(55)씨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고 그 순간을 회상한다. 심씨는 그러나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수개월 동안 항암 치료가 이어졌다. 암 세포가 눈 밑 얼굴 쪽으로 퍼지면서 한 쪽 뺨은 일그러지고 두 눈을 잃고 말았지만 시한부 삶이라는 경고는 생에 대한 희망으로 극복할 수 있었다. 두 살 때 앓은 ‘안암’으로 전맹(시각장애 1급)이 된 권도연(27ㆍ여)씨. 색깔은커녕 한 줌의 빛도 보지 못하는 그가 세상과 마주섰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 너와 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담기 위해서다. 그가 점자와 소리에 갇혀 지내던 삶의 틀을 깨보자고 결심한 것은 4개월 전. 우연한 기회에 지인의 소개로 상명대학교 영상ㆍ미디어연구소(소장 양종훈)가 운영하는 ‘사진교실’을 알게 됐다. 그는 “처음에는 앞도 못 보는데 사진은 찍어봐야 뭐하고 배워봐야 시간만 낭비할 것이라 여겼다”며 “하지만 언제까지 갇혀 지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른 사람과 공감대를 나누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지난 9월20일 발대식을 한 뒤 다른 1~3급 시각장애인 9명, 상명대 사진학과 교수 및 학생들과 함께 3개월여간 공연장, 수도권 매립지 등 전국을 누볐다. 토요일에는 사진 강의를 듣고 주중에는 일대일 멘토를 맺은 상명대 사진학과 학생들과 도심 곳곳을 돌아다녔다. 카메라 작동법조차 모르는 ‘왕초보’였던 그는 셔터 누르는 법부터 시작해 사진 촬영에 대해 하나씩 알아가면서 묘한 쾌감을 느꼈다. 눈으로 직접 볼 수는 없었지만 피사체를 직접 만지고 냄새를 맡는 등 오감을 총동원해 찍는 사진은 색다른 경험이었다. 10월에는 북한산에도 올랐다. 산 정상에서 바라본 서울 도심, 푸른 하늘과 구름, 오색 단풍이 곱게 물든 나무들…. 모든 것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열심히 셔터를 눌러댔다. 그는 “좋은 장면을 담기 위해 조금 과장해 생사를 가를 정도로 열심히 했다”고 전했다. 이렇게 찍은 그의 작품과 다른 시각 장애인들의 작품이 한자리에 모였다. 대학로 예술디자인센터 갤러리 1관에서 열리는 ‘시각장애인과 함께하는 사진 전시회’에서다. ‘마음으로 보는 세상’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번 전시회에는 총 60여점의 작품이 선보인다. 작품은 사람 얼굴이 절반만 나왔거나 피사체가 기울어진 게 대다수지만 눈이 아닌 마음으로 찍은 사진이 또 다른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마음으로 보는 세상을 알게 해준 그들에게 보이지 않는 것을 촬영하는 이유에 대한 질문은 필요하지 않았다’는 전시회의 의미가 작품 한 점 한 점마다 오롯이 녹아 있다. ‘사진 교실’ 지도를 맡은 양종훈 교수는 “2005년 시각 장애인 10명과 킬리만자로에 올랐을 때 그들의 강인한 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며 “일반인에게 이들의 의지와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어 이 교실을 운영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시각 장애인들은 일반인에 비해 활동 자체가 좁혀져 있어 자신감을 잃고 쉽게 포기하려 한다. 세상과 부딪치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번 전시회에서 ‘작가’로 데뷔한 권씨의 당찬 포부다. 어느 해보다 특별한 크리스마스를 맞는 그는 “첫 작품을 크리스마스 때 세상에 소개할 수 있어 무척이나 의미 있고 특별하게 느낀다”며 “내년에도 ‘사진 교실’에 참여해 보다 넓은 세계를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전시회는 오는 28일까지 상명대 예술디자인센터 1관에서 열린다. (02)2075-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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