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진실' 보다 강력한 '인상'

김재록 사건의 초점이 ‘현대차’에 집중될 당시 현대차의 한 과장은 기자에게 “삼성 때문이 아니냐”고 했다. 그의 생각은 “삼성은 8,000억원씩이나 사회에 헌납했는데 현대는 뭐하고 있느냐란 메시지가 아니냐”는 것이다. 그는 “이런 식으로 손대면 안 걸릴 재벌이 어디 있느냐”고 푸념도 했다. 당시 검찰은 “현대는 표적이 아니다”고 말했다. 현대차 과장과 검찰의 말 중 어떤 게 진실에 더 가까울까. 검찰은 현대차가 수사의 지류라고 한 지 하루 만에 “현대는 이제 수사의 본류”라고 번복했고 현재 현대차에 대한 검찰 수사는 ‘비자금 문제’에서 ‘편법적 경영 승계 문제’까지 전방위로 뻗치고 있다. 결과만 놓고 보면 검찰의 말은 진실과 상당히 거리가 있어 보인다. 진실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검찰의 말이 거짓이라고 해서 현대차 과장의 말이 진실이 될 수는 없다. 문제는 재계가 ‘표적 수사’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정도 되면 더 이상 진실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현대차 수사가 재계를 향한 정치권의 메시지란 ‘인상’은 그 자체로 위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부 기자로서 정치권이 이 같은 ‘인상 효과’를 이용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은 지난 2월 전당대회에서 ‘5대 양극화 해소’를 최우선 정책으로 내걸었고 그 무렵 강봉균 정책위의장은 ‘지배구조 개선 문제’를 정치권 화두로 던졌다. 모두 노무현 정부가 집권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강조하고 있는 정책이다. 본보기를 정치권이 찾았다면 현대보다 적절한 기업은 없었을 것이다. 현대차가 삼성 수준의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강구하고 있고 재계가 머리를 맞대고 양극화 해소 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한 게 정치권의 의도이든 아니든, 재계는 현재 여권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고 있다. 천정배 법무부 장관은 10일 국회 정치 분야 대정부 질문에 나와 “이제 (수사의 본류인) 정ㆍ관계 로비 사건도 집중 수사할 방침”이라고 했다. 왜 천 장관의 말이 기자에겐 “이제 어느 정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란 의미로 들리는 것일까.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