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지주회사 시대가 활짝 열리고 있다. 은행ㆍ보험ㆍ증권ㆍ자산운용사 등 다양한 금융회사들을 하나의 그룹으로 묶어놓은 금융지주회사는 대표적인 금융 컨버전스 사례다. 금융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면 대형화ㆍ겸업화에 따른 규모의 경제가 가능하다. 또 계열사 간 연계영업, 복합상품 판매 등으로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 오는 2009년 2월 시행되는 자본시장통합법을 앞두고 금융지주회사가 대세로 자리잡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은행권이 금융지주회사 설립 주도=금융지주회사는 현재 우리ㆍ신한ㆍ하나ㆍ한국금융 등 4개다. 한국투자증권을 주력으로 삼는 한국금융지주를 제외하면 모두 은행을 중심으로 설립됐다. 은행권의 금융지주회사 설립 작업은 계속 진행되고 있다. 국민은행이 9월 말을 목표로 지주회사 전환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SC제일은행과 한국씨티은행도 지주사로의 전환을 추진 중이다. 민영화 대상인 산업은행과 기업은행도 지주회사 전환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한편 보험사들도 금융지주사 전환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메리츠화재는 이미 지주사로의 전환을 선언했고 동부화재는 중장기적으로 지주사 전환을 준비 중이다. ◇시너지 극대화를 통해 수익성 높여야=우리금융지주는 우리은행ㆍ우리투자증권ㆍ우리아비바생명 등 10개 자회사와 19개 손자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신한금융지주는 신한은행ㆍ신한카드ㆍ굿모닝신한증권 등 12개의 자회사와 19개 손자회사, 하나금융지주는 하나은행ㆍ하나IB증권 등 7개 자회사에 4개 손자회사를 두고 있다. 우리금융지주와 신한금융지주는 독립법인 형태의 자회사를 두고 있는 일반적인 금융지주사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하나금융지주는 씨티ㆍJP모건 등 해외 주요 금융지주회사들이 채택하고 있는 사업단위(BU) 중심의 매트릭스 조직으로 운영되고 있다. 하나금융이 운영하는 매트릭스 조직은 하나은행과 하나IB증권 등 계열사들이 갖고 있는 개인금융ㆍ기업금융ㆍ자산 관련 조직을 기능별로 재편, 운영함으로써 효율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국내 금융지주회사의 최대 과제는 '수익창출역량 확대'다. 수익성 지표 가운데 하나인 총자산이익률(ROA)은 금융지주사가 시중은행보다 떨어진다. 증권ㆍ자산운용ㆍ보험사 등의 ROA가 은행보다 높다는 점, 연계영업에 따른 시너지 효과 등을 감안하면 낮은 수준이다. 신한금융지주(1.26%)를 제외하면 지난 6월 말 현재 ROA는 ▦우리금융지주 0.7% ▦하나금융지주 0.80% 등으로 국민은행(1.10%)보다 떨어진다. 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현재 은행지주회사의 1인당 평균영업이익은 약 1억2,000만원으로 은행보다 17.1%나 낮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증권지주회사의 1인당 평균영업이익도 증권사 평균에 비해 29.8%나 낮다. 서병호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 국내 금융지주회사들은 '규모의 비(非)경제'를 달성하고 있다"며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투자 등에 대한 규제완화 서둘러야=이제 금융지주회사가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게 시급한 과제로 지적된다. 이는 '한국형 금융지주회사'의 발전모델을 어떻게 만들어내느냐는 문제와 연결된다. 결국 적절한 규제완화 및 지원 등을 통해 '한국형 금융지주회사'의 모델을 만들어가야 하는 셈이다. 이 과정에서 불거지는 문제가 금산분리다. 투자 관련 규제는 완화하면서도 '금산분리 원칙'의 근간을 뒤흔드는 무분별한 규제완화는 피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는 "미국은 금융지주사의 형태와 역할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 있었던데다 금융감독 당국이 이를 모니터링하고 사후 규제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제너럴일렉트릭(GE) 같은 모델이 나올 수 있었다"며 "금산분리를 완화하기 전에 안전장치를 만드는 게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현행 금융지주사법에 따르면 금융지주사는 증손자회사를 소유할 수 없고 금융지주사 내의 자회사들은 계열사나 계열사 자회사의 주식을 소유할 수 없다. 이는 금융지주사의 다양한 투자기회를 막는 만큼 해외진출에 한해서라도 완화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지적된다. 또 금융지주사는 자기자본의 100%를 초과해 자회사에 출자할 수 없게 돼 있다. 이 또한 인수합병의 제약요인으로 작용하는 만큼 이 같은 출자제한비율을 확대하되 금융당국의 검사를 강화하는 게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금융지주 내에서 비(非)은행 부문을 육성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신한금융지주만 비은행 부문의 수익기여도가 48%에 이를 뿐 나머지는 은행에 대한 수익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 이런 구도로는 금융지주회사의 발전도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통합금융시스템을 확보하고 상대적으로 취약한 투자은행(IB), 프라이빗뱅킹(PB) 부문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겹겹 안전장치 마련 사전 규제는 최소화
■ 선진국 규제현황은
비금융자회사 소유 허용, 수직확장규제 거의 안해, 연결납세제 혜택도 부여 미국ㆍ일본 등 선진국의 경우 ‘소비자 보호’에 초점을 맞춰 금융지주회사에 대한 규제 수준을 달리한다. 씨티그룹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로 곤욕을 치르고 있지만 HSBCㆍJP모건 등은 여전히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선진국들의 경우 금융지주사의 종류에 따라 서로 다른 수준의 규제를 적용한다. 은행지주사와 보험지주, 증권업을 중심으로 한 금융투자지주에 대한 규제 수준이 차이가 난다는 얘기다. 유가증권 투자의 경우 고객의 자기책임이 강조된다. 따라서 금융투자지주의 경우에도 고객 보호 문제에 관한 한 은행이나 보험사에 비해 자유롭다는 측면이 많이 고려됐다. 영국은 아예 금융지주회사 설립 및 행위제한에 대한 규제가 없다. 미국과 일본은 은행지주사에 대해서는 설립규제와 소유제한, 자회사 업종제한 등과 같은 규제를 적용한다. 그러나 보험지주의 경우 소유제한 규정이 없으며 금융투자지주에 대해서는 사전규제가 거의 없다. 금융투자지주사인 모건스탠리는 자회사로 에너지ㆍ전력 등 비(非)금융회사를 상당수 거느리고 있다. 리먼브러더스도 지주회사 산하의 금융투자회사가 비금융회사를 직접 지배한다. 보험지주사인 버크셔해서웨이도 보험을 중심으로 금융업ㆍ비금융업 관련 자회사를 가지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금융감독당국도 증권ㆍ보험 등 비은행 금융지주회사가 비금융 자회사를 소유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해외에서는 금융지주사의 수직확장에 대해서도 거의 규제를 행사하지 않는다. 씨티그룹은 금융지주사인 씨티그룹을 정점으로 2,000여개의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씨티그룹은 미국 내에서는 물론 해외 진출이나 조세회피지역 활용을 위해 사업 부문별로 증손자회사 단계 이상으로 수직확장을 시도한다. 미국ㆍ일본 등은 금융자회사 간의 임직원 겸직도 원칙적으로 허용한다. 그러나 이해상충 가능성이 높은 자산운용업ㆍ신탁업과 다른 금융업 사이에서는 임직원 겸직을 금지한다. 한편 선진국에서는 금융지주사들이 연결납세제도의 혜택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 연결납세제도란 모회사와 자회사를 하나의 과세 대상으로 간주해 소득과 결손을 합산, 법인세를 물리는 제도다. 기업 입장에서는 법인세를 절감할 수 있는 방안이다. 특히 해외에서는 자회사의 주식소유비율이 100%에 미치지 않더라도 연결납세제도를 적용한다. 자회사 주식소유비율 기준으로 ▦독일ㆍ멕시코ㆍ이스라엘 50% ▦영국 75% ▦미국 80% ▦핀란드 90% ▦프랑스 95% ▦룩셈부르크 99% ▦일본ㆍ호주ㆍ덴마크ㆍ네덜란드 100% 초과시 연결납세제도를 적용해준다. 물론 이런 해외사례를 국내에서 그대로 적용하는 데는 무리가 따른다. 미국 등 선진국의 경우 사전 규제는 최소화하는 대신 여러 가지 안전장치를 마련해두고 있으며 장기간에 걸쳐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금융지주회사 모델을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과 일본의 경우 보험지주회사 내의 자회사가 비금융회사를 지배하는 것을 막지 않지만 비금융자회사의 손실이 보험계약자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강도 높은 자산운용 및 자본적정성 규제를 병행하고 있다. 따라서 해외 제도를 그대로 적용하기보다는 제도 변천 과정 및 배경 등을 꼼꼼히 연구한 후 활용해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 금융지주사의 한 관계자는 “국내 지주회사법은 해외에 비해 규제가 너무 많아 제대로 된 시너지를 발휘하기가 힘든 구조”라며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금융지주사의 수익을 극대화하고 업무효율을 낼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