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스티브 워즈니악 '애플창업·신화 이끈 주역'

[미리 보는 서울포럼] <br>실리콘밸리의 우상·컴퓨터 천재·마법사 워즈 등 수식어도 다양<br>일주일만에 세계 첫 PC '애플Ⅰ' 개발<br>천재적 재능으로 IT산업 발전 이끌어<br>천문학적 주식 직원들에 헐값에 주기도



스티브 워즈니악은 개인용 컴퓨터(PC) 발명가이자 애플 창업자였지만 다른 정보기술(IT) 업계 스타들에 비해 널리 알려지지는 않은 인물이다. 그러나 IT계에서 워즈니악은 ▦컴퓨터 천재 ▦실리콘밸리의 우상 ▦이 시대의 마지막 해커 ▦마법사 워즈 등으로 불린다. 워즈니악은 스티브 잡스보다 다섯 살 많으며 두 사람은 고교 선후배 사이다. 폴란드계 미국인인 워즈니악은 미 항공우주국(NASA)의 미사일 관련 엔지니어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해 어려서부터 전자공학에 깊이 빠져 있었다. 자서전에 따르면 중학생 때 측정한 IQ가 200이었다. 유별나게 전자장치에 관심과 재능이 있었던 그는 콜로라도ㆍ디앤자ㆍ버클리 등 3개 대학에서 공학을 공부했다. 대학 시절에는 미국 과학경진대회 우승을 매년 독차지하기도 했다. 그는 또 버클리대 재학 중 등록금을 벌기 위해 HP에 입사해 4년간 계산기 개발업무를 담당했다. IT라는 말이 익숙지 않았던 지난 1970년대 초 대학생이던 워즈니악은 무료 전화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최초의 통신용 해킹도구인 '블루박스'를 만들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해커들은 기존 전화 시스템의 문제점을 발견하고자 하는 선한 의도에서 해킹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때 이후 해킹이 사익을 위해 활동하는 크래커들로 변모하면서 워즈니악을 '마지막 해커'라고 일컫게 됐다. 고교 시절 컴퓨터 프로그램을 설계할 만큼 천재였던 그는 일주일 만에 모니터와 키보드를 결합, 소형 컴퓨터 '애플Ⅰ'을 만들었다. 이것이 세계 최초의 PC다. 그는 자신이 PC를 처음 만들던 날을 이렇게 기억한다. "나는 키보드의 키를 몇 개 눌러 보았다. 놀라운 순간이었다. 내가 누른 글자가 화면에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1975년 6월29일 일요일. 그때 나는 그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몰랐다. 역사상 처음으로 키보드로 글자를 쳐서 눈앞 스크린에 띄우는 일이 얼마나 획기적인 일이었는지를." 장난꾸러기였던 그는 텔레비전 방해 전파 발신장치를 만들어 사람들을 황당하게 만들거나 우스갯소리가 전화기에서 자동으로 흘러나오는 자동응답 서비스 장치를 만들어 동료들을 요절복통하게 만들고는 했다. 사람들이 그를 '해피 엔지니어'로 부르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가 HP의 안정된 엔지니어 자리를 버리고 애플을 창업한 이유도 엉뚱하다. HP에서 만난 잡스가 "회사를 차리더라도 관리업무는 하지 않고 엔지니어만 할 수 있게 해준다"고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워즈니악이 만든 '애플Ⅰ'이 날개 돋친 듯 팔리자 비즈니스 감각이 뛰어난 잡스는 1976년 4월1일 애플사를 창립했다. 애플Ⅰ이 탄생했을 당시에는 단순 PC 부품 형태였다. 잡스와 애플을 창립한 그해 7월 지금의 PC 형태의 애플Ⅰ이 탄생하게 됐다. 모니터 화면에 배경과 글씨가 나올 수 있도록 그래픽 환경의 컴퓨터 운영체제(OS)를 처음 만든 사람도 워즈니악이다. 그는 1979년 제록스연구소에서 개최한 기술 시연회에 참석했다가 아이디어를 얻어 그래픽 OS를 개발했으며 이를 탑재한 매킨토시는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최근 애플의 약진을 이끈 '아이팟(iPod)' 역시 워즈니악의 원천기술에서 파생된 것이다. 돈을 번 후의 행동도 다른 사람과 달랐다. 그는 1980년 애플이 상장할 당시 잡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천문학적인 주식을 직원들에게 헐값으로 나눠줬다. 2,000만달러 이상의 자비를 들여 미국과 러시아 등에서 수차례 록 콘서트를 열고 동구권에 컴퓨터를 기증하기도 했다. 1981년 경비행기 추락 사고로 머리를 다쳐 한때 기억상실증에 걸리면서 결국 애플을 떠난 그는 초등학교 교사로 변신했다. 자비를 들여 구입한 애플 노트북과 인터넷 계정을 학생들에게 나눠주고 컴퓨터 교육을 하던 그는 2007년 방한 기자간담회에서 "부자를 친구로 두지 않는 것이 나의 철학"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일렉트로닉프론티어재단을 설립했으며 새너제이 소재의 어린이개발관ㆍ기술박물관ㆍ실리콘밸리발레 등 공공기관 설립에 기여했다. 1985년 애플 탄생의 업적을 인정받아 미국 최고의 혁신가에게 수여되는 국립기술훈장을 받았고 2000년에 투자자 명예의 전당에 추대됐으며 권위에 빛나는 하인즈 기술경제고용 어워드를 수상하기도 했다. 1983년 '클라우드9'라는 회사를 차려 통합 리모컨을 발명했고 2002년 자신의 애칭을 딴 회사 '워즈'를 설립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투자업체 액콰이어사를 설립하고 애플의 자문역도 맡아 여전히 발명에 열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워즈니악에 따르면 그는 리모컨 사업을 하면서도 서류상 여전히 애플의 직원이었고 월급도 꼬박꼬박 받았다. 그의 일부분은 항상 애플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 약력 ▦1950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1970년 스티브 잡스와 첫 대면. 의기투합해 잡스의 침실과 차고에서 컴퓨터 개발 돌입
▦1976년 4월 자본금 1,000달러로 애플 창립. 세 번째 창립멤버였던 로저 웨인은 2주 후 탈퇴
▦1976년 7월 애플Ⅰ, 666.66달러에 출시. 총 200대 생산
▦1977년 애플Ⅱ, 1,298달러에 출시. 개인용 PC의 본보기로 유명해짐
▦1981년 경비행기 추락 사고로 애플 휴직. 기억상실증 등 후유증에 시달림
▦1983 클라우드9 설립. 통합리모컨 발명
▦1985년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대통령에게서 국립기술훈장 수상
▦1987년 애플에서 물러남. 이후 지금까지 애플 소속이지만 경영ㆍ개발 등에 전혀 참여하지 않고 있음
▦2002년 워즈(Wheels Of Zeus) 설립. 벤처 투자자들에게서 600만달러를 끌어모았지만 2006년 폐업
▦2009년 스토리지 벤처기업 퓨전io 최고과학자직 수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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