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세계의 사설] EU 부가세 인하 현명하지 못해

지난 2002년 프랑스 대선 캠페인 당시 자크 시라크 대통령 후보는 호텔과 레스토랑 업계를 위해 부가가치세(VAT) 인하에 대한 유럽연합(EU)의 합의를 이끌어내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 프랑스 대통령이 된 시라크는 여전히 VAT 인하에 대해 EU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치고 있다. 가장 강력한 반대자는 새로 탄생한 독일의 연립정부다. 독일 연정은 VAT를 3% 인상하겠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기 때문이다. 시라크의 이러한 세금인하 정책은 불필요한데다 현명하지도 못하다. 프랑스 정부가 점진적으로 호텔과 레스토랑 업자들에 세금부담을 줄여주는 상황이어서 추가적인 세금인하는 불필요하다. 또 시라크의 VAT 인하 주장은 다음주 열릴 EU 재정협상에서 프랑스와 EU 예산 문제로 갈등 중인 영국 정부에 힘을 실어준다는 의미에서 현명하지 못한 것이다. 또 시라크가 EU 전체의 재정상태를 무시하고 ‘나 홀로 세금인하’를 고집한다면 EU 내에서 프랑스에 대한 악감정이 격화될 가능성이 높다. EU가 단일시장의 작동을 꿈꾸며 통합된 판매세 정책을 세운다는 것은 불필요한 행위이다. 미국은 주별로 판매세율이 다르지만 여전히 단일시장으로서 기능하고 있다. EU 회원국들은 나라별로 제각각인 VAT 세율 때문에 상품과 서비스 교역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는다는 위험부담을 안고 있지만 국경 근처에서 최소 세율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합의점을 도출해내고 있다. VAT가 물론 만능의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 VAT는 소비자들의 구매 행위에 별다른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또 90년대 말 논의된 것과는 다르게 VAT 인하로 일자리를 창출하거나 지하 경제 인구를 양지로 이끌어내는 효과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최근 VAT를 깎는 대신 임금을 줄일 경우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는 보고서도 나온 바 있다. 그러나 VAT에 대한 정부의 접근은 국지적이어서는 곤란하다. 법인세와 마찬가지로 VAT와 관련해서도 정부는 특정 계층, 특정 산업을 위해 세금을 깎아주는 것이 필요한지 고민해야 한다. 세금 정책과 관련한 정부의 올바른 역할은 세금면제 범위를 최소화하고 세금징수는 광범위하게 하는 대신 세율은 낮게 유지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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