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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어느 IT 분야 대기업은 자사가 보유하고 있는 막대한 데이터를 이용해 고객들을 세분화하는 ‘세그먼테이션 전략’을 세우기로 했습니다. 그를 위해서 제일 먼저 한 일이 빅 데이터 전담 부서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분석하면, 작은 데이터를 한정된 샘플로 볼 때 발견하기 어려운 통찰을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들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대두한 적이 있습니다. 특히 일반적인 사회 조사 분석에서 3,000개~10,000개 정도의 데이터를 관찰하는 것과 달리, 빅 데이터는 10만 단위가 넘는 자료들을 직접 분석하여 보다 강한 설득력을 얻을 수 있는 자료를 만들어 낸다는 이점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빅 데이터를 갖고 기업들이 일하려 하면 할수록, 전문 컨설팅 회사에 의존하는 비율이 높아진다는 역설적인 사실입니다. 진정한 ‘내부화’(In house strategy)의 의의가 사라져 버리는 것이죠.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선 수십만 건의 데이터를 온라인 공간이나 지리 정보, 사진 정보 등에서 불러오는 ‘데이터 마이닝(Data Mining)’ 기법을 전문적으로 습득한 인력을 유치하지 못한 데 있습니다. 우선 분석을 하기 위해서는 방대한 자료들을 우물에서 길어 올리고 정리하여 인프라를 구축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아직 많은 대기업들은 이런 조직적인 기반을 충분히 구축하지 못하고 있기에, 빅 데이터 전담 부서의 비중이 커질수록 더 많이 외부로부터 지혜를 빌려야 하는 안타까움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데이터를 분석하고 연구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시사점을 뽑아낼 줄 아는 혜안입니다. 수백만 건의 데이터가 확보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 또는 그것이 만들어진 배경에 대해 이해하는 것입니다. 사회 현상들 중에 이유 없이 일어나는 일은 없듯이, 데이터 역시도 근거와 환경적인 조건을 가지고 만들어 집니다. 그런데 유독 대기업 안에서 빅 데이터로 상품 기획을 한다거나, 새로운 시장 조사 분석의 틀을 만들었다며 발표를 하게 되면 ‘숫자’의 신화에 기대는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몇 억 건의 문서를 살펴 보았습니다’ 또는 ‘10만 명의 고객 DB를 구축하여 이들의 행동 패턴을 살펴봤습니다’라는 문구를 앞세우는 것이죠.
기자는 여러 번 통계 역시도 정치적인 도구로 활용될 수 있음을 이야기했습니다. 누구나 반드시 믿어야 할 객관적인 자료가 아니라, 그것을 구축하고 가공하는 관점, 분석의 대상을 고르는 관점 등에 의해 얼마든지 방향이 변형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강력한 통계 분석 인프라를 갖고 있는 한국은행의 다양한 경제 동향 지표들도 ‘보정치’와 ‘합산 방식’과 같은 가공 스킬을 통해 매만져집니다. 전문가가 어떤 숫자에 좀 더 중요한 가치를 둘 것이냐에 따라 얼마든지 해석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단순히 ‘빅’ 데이터라는 단어에서 진리를 발견하려는 일련의 움직임은 너무나 공허합니다.
게다가 좋은 데이터를 알아볼 줄 아는 ‘눈’도 필요합니다. 빅 데이터 전문가인 다음 소프트의 송길영 부사장은 온라인 공간에 유포되는 데이터 중 상당수가 어떤 사람이 처음 만든 문서 또는 오피니언을 다른 사람들이 인용하고 퍼 나르는 ‘쏠림 현상’에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방대한 양을 갖고 있다고 자신하는 데이터가, 사실은 거대한 변화 흐름을 만들어 내고 있는 몇몇 오피니언 리더가 남긴 흔적의 확산 결과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여러 유형과 시점의 자료들을 상호 보완적으로 살펴보는 게 필요하다고 송 부사장은 여러 번 강조했습니다.
정부는 공공 데이터 개방과 빅 데이터 분석을 통한 새로운 ICT 산업 참여자를 육성하겠다고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앞으로도 중요한 미래 성장 동력으로 각광받을 것 같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빅 데이터를 제대로 모으고 활용하려면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은 것 같습니다. 얼마나 좋은 의사결정의 도구인지 홍보하지만 말고, 그것을 정확하게 쓰기 위해 필요한 환경과 시장 참여자들 차원의 마인드에 대해서도 고민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iluvny23@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