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연극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타인에 대한 편견을 벗어 던지는 성찰의 과정 담담하게 보여줘

시간이 흐르면서 자기 자신과 타인에 대해 가졌던 오해와 편견을 하나 둘씩 벗어버리고 세월의 무게가 결코 헛되지 않도록 아름답게 늙어가는 건, 그래서 후회 한 톨 남기지 않고 죽음의 문턱을 넘는 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원초적인 바람이 아닐까.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오른 연극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는 72세의 괴팍한 유태인 할머니 데이지(손숙)와 60대 흑인 운전기사 호크(신구)가 키워가는 소박한 우정과 아름답게 늙어가는 인간의 모습을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그려내고 있다. 알프레드 유리의 동명의 원작 소설은 퓰리처 상을 탔고, 영화는 아카데미와 베를린영화제에서 상을 받았으나 국내에선 이번에 처음으로 연극 무대에 올랐다. 무대는 1940~1970년대 인종 차별이 팽배했던 미국의 남부 조지아 주를 배경으로 삼는다. 흑인에 대한 인종 차별과 유대인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이 교차하는 지점에 작품은 정확하게 안착한다. 데이지 여사는 유대인은 미국의 돈을 싹싹 긁어간다는 음모론에 사로잡혀 스스로의 자유를 옥죈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과 평판에 지나칠 정도로 신경을 쓰고, 부자이면서도 부자로 보이지 않으려 하고, 자신의 소유물에 대해서는 병적으로 집착한다. 흑인인 호크에게 향하는 인종 차별도 곳곳에 배치된다. 데이지 여사는 운전기사로 고용된 호크를 처음엔 도둑으로 의심하며 경계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한다. 그러다 호크의 진면목을 깨달으면서 까막눈인 호크를 위해 크리스마스 선물로 영어 교습책을 주기도 하고 마틴 루터 킹 목사의 강연에 가자는 제안도 한다. 그러나 자신의 변화를 인정하기 싫어하는 데이지 여사는 “난 크리스마스 선물은 안 해요. 아이들 가르치다 남은 책이 있어서 주는 것 뿐이예요”라며 냉정을 가장한다. 호크는 데이지의 까칠함을 넉살 좋은 웃음으로 받아넘기는 넉넉함으로 무대를 따듯하게 감싼다. 후반부에서 호크가 치매에 걸린 데이지를 찾아 케이크를 손수 떠먹여주는 장면은 흐뭇한 미소를 절로 짓게 만든다. 이 작품은 보통의 연극이 갖고 있는 팽팽한 긴장감이나 갈등 구조, 혹은 갑작스러운 반전을 욕심내지 않는다. 다만 25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러가는 동안 한 사람의 여자와 한 사람의 남자가 편견의 굴레를 벗고 인간적으로 성숙해가는 과정을 편안하게 그려낸다. 여기에 필요한 것은 1시간 40여분의 공연을 지루하지 않게 만드는 ‘잔잔한 갈등’이다. 또 구부러져가는 허리와 힘없는 발걸음, 가늘어진 목소리 등으로 25년에 걸친 세월의 무게를 섬세하게 잡아내는 두 배우의 관록과 열정은 작품을 빛내는 최고의 무대 장치라 평할 수 있을 듯하다. 오는 12일까지 명동예술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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