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확대되는 일 영향력(동남아 금융위기)

◎“자생불능 기댈곳은 일본뿐”/각국 구제자금 지원 요청 러시/일도 현지업체 타격 방관 못해/“이기회에 엔블럭강화” 속셈도지난달초 태국중앙은행은 부도위기에 몰린 16개 금융기관에 대해 영업정지명령와 함께 한달내에 합병계획서를 제출하라는 전격 조치를 단행했다. 태국에서 시작된 동남아 통화위기의 진앙지가 취약한 금융부문이라는 것을 입증해준 사건이었다. 통화폭락으로 혼이 나고있는 동남아국가들은 과도한 외자의존체질과 금융기관들의 방만한 자산운용 및 부실화란 공통점을 안고있다. 그러나 정부의 실책도 위기를 키우는데 한몫했다.태국은 지난 92년 역외금융센터 육성조치를 발표하면서 과감한 자본자유화조치를 단행했다. 그 결과 지난해말까지 약 8백억달러의 외자가 도입됐다. 그러나 이 돈들이 대부분 부동산으로 흘러들어간 것이 화근이었다. 경기침체로 부동산경기가 꽁꽁 얼어붙자 은행들이 엄청난 부실채권을 떠안게됐다. 고질적인 금융 불안을 증폭시키는 악순환의 고리에 걸려든 것. 금융산업기반이 취약한 동남아국가들의 성급한 자본자유화조치가 무서운 댓가를 치루고있는 것이 요즘 동남아를 휩쓸고 있는 통화위기의 정체인 셈이다. 여기에다 환율을 시장기능에 맡기지않고 경직적으로 운영한 것도 불에 기름을 붙는 꼴이 됐다. 태국정부는 평가절하가 중장기적으로 수출경쟁력 강화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필리핀의 경우 달러당 1페소 평가절하되면 정부의 상환부담이 2억달러씩 늘어나는 등 외채부담은 가중될 수 밖에 없다. 결국 사면초가에 처한 동남아국가들은 탈출구를 IMF(국제통화기금)나 일본 등 외부의 지원에서 찾아야될 형편이다. 외부수혈없이는 자생력을 상실한 금융시스템을 재정비하기는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태국은 현재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2백∼4백억달러의 자금이 필요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필리핀은 페소화를 방어하는데 며칠새 10억달러를 투입하는 바람에 외환보유액이 1백억달러로 줄어들었다. 이미 IMF관계자들이 각국 정부와 지원방법을 논의중이며 태국정부는 IMF에 2백억달러의 구제자금을 요청해놓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IMF의 지원엔 허리띠를 졸라매라는 가혹한 조건이 뒤따른다는 점이다. 여기에 반발하고 있는 태국정부는 그 대안으로 일본측에 구제자금을 제공해줄 것을 요청했다. 일본이 동남아를 위기의 수렁에서 건져낼 수 있는 구원자로 떠오르고있는 셈이다. 이는 지난 94년 멕시코 통화위기때 미국의 역할과 흡사한 것이다. 지난 70년대부터 동남아에 막대한 투자를 해온 일본으로서도 동남아의 위기를 방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진출 일본기업들이 현지통화 폭락세의 격랑에 엄청난 타격을 입고있기 때문이다. 그렇지않아도 이번 사태는 동남아에서 엔화의 결제비중을 높이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동남아국가 통화들의 무리한 미달러와의 연동이 환율의 고평가를 불러 일으킨 요인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일본을 중심으로 IMF, 대만 등은 외환위기 확산 방지를 위해 일단 협조융자나 차관 제공 등 적극적인 협력의사를 보이고 있다. 일본정부는 태국의 통화위기 대책으로 최고10억달러를 제공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미국이 중남미에 행사하고있는 영향력을 동남아에서 흉내내어보고 싶은 일본으로선 이번 동남아위기는 「엔블럭」을 확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셈이다.<정상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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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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