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외환위기를 겪은 사람들] 이계식 당시 기획예산위 정부개혁실장

"재정운용 후진적…개혁 서둘러야" <br>정부 생산성·경쟁력 높이기 위해선 한시가 급해<br>돈문제 걸려 있어 최고결정권자 결단·지원 필수<br>DJ때도 정부내 저항 강해 행정개혁에만 치우쳐



[외환위기를 겪은 사람들] 이계식 당시 기획예산위 정부개혁실장 "재정운용 후진적…개혁 서둘러야" 정부 생산성·경쟁력 높이기 위해선 한시가 급해돈문제 걸려 있어 최고결정권자 결단·지원 필수DJ때도 정부내 저항 강해 행정개혁에만 치우쳐 김민열기자 mykim@sed.co.kr 최형욱기자 choihuk@sed.co.kr 관련기사 • 김용환 "DJ '換亂극복' 선언 왜 서둘렀는지…" • 김중수 "잠재성장률 저하 가볍게 봐선 안돼" • 최종욱 "제역할 못한 정부·은행·기업 '합작품'" • 유종근 "DJ불신에 美와 외채협상 제일 힘들어" • 이규성 "위기는 올 수 있다. 문제는…" • 이연수 "정부 '하이닉스 무조건 팔아라' 독려" • 정덕구 "대선 휘말려 경제위기 올까 걱정" • 위성복 "기업 사정 모른채 구조조정 밀어붙여" • 손병두 "대우그룹 몰락, 정부도 책임있다" • 김대송 "증권사 무분별 해외진출 리스크 크다" • 이용득 "관치금융이 환란 부른 결정적 요인" • 강봉균 "대우, 구조조정 빨랐으면 해체 안돼" • 임창열 "환란 막을수 있었다" 비공개 사실 • 임창열 "'경제 괜찮다' 강변은 실수 되풀이" • 전주성 "재정 흔들리면 위기 또 찾아올수도" • 김규복 "정책금융 의존 中企이젠 못버텨" • 이만우 "기업엔 엄격한 회계…정부는 어물쩍" • 이계식 "DJ때 정부저항 강해 행정개혁에만" • 최 광 "건전재정 위해 '세출 구조조정' 시급" “재정제도가 경제수준에 훨씬 못 미치는 후진적인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정부의 생산성과 경쟁력을 높이려면 행정개혁도 중요하지만 이보다 재정개혁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외환위기 직후인 지난 98년부터 2년6개월간 기획예산위원회(현 기획예산처)에서 공공 분야 개혁을 주도했던 이계식 전 기획예산위 정부개혁실장(1급)은 아직도 재정개혁의 중요성과 내용이 제대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 전 실장은 “DJ정부 시절 정부 부문의 개혁을 위해 정부개혁실도 만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대부분이 ‘행정개혁’일 뿐 ‘재정개혁’의 성과는 미흡했다”고 회고했다. 재정개혁이 소홀했던 데 대해 이 전 실장은 “개혁에는 항상 저항이 따르게 마련인데 재정개혁의 경우 정부 내부의 저항강도가 워낙 강했다”며 “정부 조직이 개편되거나 인사제도를 바꾸는 행정개혁의 경우 모든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은 데 비해 재정제도는 자기가 직접 주무르는 돈 문제가 결부되기 때문에 이해 당사자들이 사생결단으로 저항하게 마련”이라고 설명했다. 재정개혁을 수행하려면 최고결정권자들의 인식과 결심이 꼭 필요하다고 그는 덧붙였다. -외환위기 이후 정부개혁을 평가한다면. ▦정부개혁은 크게 행정개혁과 재정개혁으로 구분되는데 DJ정부는 행정개혁 분야에 치우쳤다. 재정개혁에는 상대적으로 적은 노력과 관심이 주어졌고 그 성과도 미흡했다. 국민의 정부 초기만 해도 정부조직을 개편하고 인사제도도 고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재정개혁은 예산제도를 비롯해 조세제도와 회계제도를 개혁하는 것인데 그 저항의 강도가 행정개혁보다 훨씬 강력하다. 사람들이 얼마나 돈 문제에 민감한지는 일찍이 마키아벨리가 아버지를 죽인 원수와 돈을 빼앗아간 자를 비교해 지적하기도 했다. 돈 문제가 결부되면 사람들은 사생결단으로 저항하게 마련이다. 이처럼 어려운 재정개혁을 하려면 최고결정권자들의 인식과 결심, 그리고 확고한 지원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게 인식의 문제이다. 행정개혁 프로그램을 높은 분들에게 설명하고 설득하는 것은 비교적 쉬운 데 비해 복잡한 숫자와 제도가 관련된 재정개혁 프로그램을 이해시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 수년 전 경제 부총리, 예산실장과 셋이서 재정개혁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었는데 대화가 전혀 되지 않아 곤욕을 치른 기억이 있다. -현정부의 재정개혁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개혁을 즐겁게 한다는 것은 사기다. 수술할 때 즐겁게 하자는 것인데, 무엇인가 고치는 것은 고통이 따르게 마련이다. 치유되고 나면 즐겁지만 수술부터 그렇게 하자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참여정부 들어 공무원 수는 늘고 예산적자도 계속되지 않았는가. 92~94년 국제통화기금(IMF)에서 정규직원으로 근무한 적이 있는데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재정건전성의 비법을 묻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국이 재정건전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재정 인플레이션에 대한 국민적인 공감 때문이었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50년에는 무려 7회에 걸쳐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했는데 전적으로 차입금을 재원으로 했다. 차입금에 의존하는 적자재정으로 통화량은 계속 늘어났고 인플레이션이 가속돼 경제운용에 큰 부담이 됐다. 80년대 들어 재정건전성이 회복된 뒤에도 재정이 조금만 흔들리면 난리가 났다. 공무원들은 곧바로 위축됐다. 한국 재정건전성의 비결은 써야 할 곳에 쓰지 않고 재정 인플레이션에 대한 공포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외환위기에서 벗어나도록 한 것은 결국 재정 아닌가. -최근 재정건전성이나 국가채무 논란이 자주 불거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큰일났다고 하는데 국제적으로 비교해보면 아직 건전성을 크게 우려할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앞으로 위기가 닥쳤을 때 큰 쿠션 역할을 할 수 없게 됐다는 점은 분명하다. 연금ㆍ보험재정이나 통일비용 등 미래에 대한 준비가 부족하지 않은가. 무엇보다 국가채무 증가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것인데 (환율방어 및 공적자금 상환을 제외하고) 적자가 생기는 원인이 무엇이겠는가. 한마디로 엉터리 지출이 많기 때문이다. 낭비를 줄이는 데 포커스를 맞춰야 한다. KTX 시작할 때 예산이 5조원이었는데 끝날 때 보니 30조원이 넘었다. 국회 예산심의 기간에 가장 많이 싸우는 것 중 하나가 타당성 용역만 일단 해달라는 것이다. 그것만 올라가면 예산이 나오기 때문이다. 1,000억원이 아니고 100억이라고 일단 시작한 다음 결국 1,000억원을 모두 받아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통령에게 희한한 것을 보고해도 시간이 지난 뒤에는 챙기는 사람이 없어 1,000억원짜리 국책사업이 몇조원짜리로 둔갑하는 것이다. -예산제도에서 시급하게 고쳐야 할 부분은. ▦예산규모와 수치의 정확성을 높이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개혁과제이다. 우리나라 공무원의 인건비를 보면 세계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그런데 ‘후생복리비’라는 것이 있다. 총무처에서 후생 담당 정책자문위원을 오래 했는데 신문에 ‘공무원 봉급 7% 인상’이라고 나오면 실제 인상률은 15%나 된다. 겉으로는 내세우는 한자릿수 인상은 허구적인 수치일 뿐이다. 공무원 인건비는 국제기준에 따라 복리후생비를 모두 포함해 계상해야 한다. 비단 인건비뿐 아니라 DJ정부 당시 구조조정 인원 수, 실업률, 공무원 수 등 다른 수치들도 마찬가지다. 예산지출의 낭비도 바로잡아야 된다. 비현실적인 예산단가를 사용해 수치를 맞추려고 수량을 조정하는 일이 반복될 경우 편법주의가 생활화되고 준법정신이 희박해질 수밖에 없다. -재정운용에서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 ▦수지(收支)에 대한 개념이 왜곡된 것이 가장 큰 문제다. IMF에서 일하면서 몽골의 재정개혁을 도와준 적이 있었다. 그곳 예산실장과 개혁을 위한 힘겨운 씨름을 하면서 인간적으로 가까워졌다. 헤어질 때쯤 그가 고백 비슷한 것을 했다. 자기가 오랫동안 예산을 맡아왔는데 수지 개념을 알게 된 것은 IMF 사람들을 만난 후부터라는 것이다. 사연인즉, 오랫동안 옛 러시아 위성국가 노릇을 하면서 세금을 대충 걷고 방만하게 지출해 적자가 생기면 모스크바로 달려갔다고 한다. 러시아는 또 군말 없이 적자분을 지원해줬다는 것이다. 이런 나라살림을 오래 하다 보니 수지 개념을 잊어버렸다는 것이다. 이 얘기를 들으면서 한심하다는 생각과 함께 우리도 비슷한 상황에 처한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다. 지금도 적자 보전 재원인 국채나 지방채 수입이 예산 편성 때 세입 항목으로 분류돼 한국의 재정수지는 항상 균형으로 편성되고 있다. ◇ 약력 ▦48년 전남 목포 ▦경기고, 서울대 경제학과 ▦82~95년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 ▦89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자문관 ▦92~94년 국제통화기금(IMF) 이코노미스트 ▦95년 한국개발연구원 재정복지팀장 ▦95년 한국재정학회 회장 ▦98년 기획예산위원회 정부개혁실장 ▦99~2000년 기획예산처 정부개혁실장 ▦2000년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2003년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2004~2006년 제주도 정무부지사 ● 통일비용 최고 3조弗 중장기 재정계획에서 재원조달방안 마련을 규모·감당능력등 불투명…신용등급 조정에 악영향 지난 2월6일 국제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푸어스(S&P)는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열린 '정부 신용등급 설명회에서 "당분간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이 상향 조정될 가능성은 낮다"고 못박았다. 그 이유로 가장 먼저 꼽은 게 북핵 등 지정학적 리스크였다. 특히 존 체임버스 S&P 정부신용평가그룹 부대표는 "북한이 붕괴된다면 이를 흡수 통일해야 하는 한국이 부담할 비용은 예측할 수 없다"며 한국의 재정부담 가능성을 우려하기도 했다. 통일 비용 문제가 국가신용등급에도 악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정부가 소모적인 논쟁을 끝내기 위해서라도 재원조달 및 재정 감당 능력 등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국내외 연구기관들은 현재 통일의 시기와 방법, 분담 기간에 따라 통일 비용을 적게는 1,000억달러, 많게는 3조달러로 추정하고 있다. 편차가 너무 커 비용산정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매년 남한 국내총생산(GDP)의 2~5%선이 소요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예상이다. 실제 독일의 경우 GDP의 5%가량을 10여년간 통일비용으로 쏟아부었지만 실업난, 생산성 저하 등에 시달려야 했다. 문제는 정부의 재정적자가 고착될 조짐을 보이면서 통일 비용을 마련할 수 있는 여력이 줄고 있다는 점이다. 기획예산처가 지난해 작성한 2006∼2010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통일예산은 2006년 2,218억원, 2007년 1조716억원, 2008년 1조1,710억원, 2009년 1조3,943억원, 2010년 1조5,885억원 등이다. 이와 별도로 비상사태에 대비한 중장기 재정운용 계획은 북한을 자극할 우려가 있다며 공론화를 꺼리는 상황이다. 하지만 흡수 통일은 아니더라도 대규모 탈북사태 등 주변환경이 급박하게 돌아갈 경우 정부재정이 감당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실제 정부가 지난해 '비전 2030'을 발표하면서 오는 2030년까지 국민 삶의 질을 세계 10위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1,100조원의 재원 조달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통일 비용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박종규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97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후 통일 비용이나 시나리오별 대응방안 등에 대한 논의가 사라지면서 준비가 안 된 게 사실"이라며 "정부가 중장기적 재정계획에서 통일 비용의 재원조달이나 국책사업의 우선순위 등을 국민들에게 명확히 밝힐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입력시간 : 2007/03/22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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