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과거청산도 좋지만…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주요 경제단체의 수장들은 최근 틈만 나면 “대통령 선거와 관련해 불법 대선자금은 일절 주지 않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재계 수장들이 대선자금과의 단절을 선언하고 나선 것은 지난 2002년 대선에서 불법대선자금 문제로 재계가 큰 홍역을 치렀기 때문이다. 재계의 이 같은 의지표명은 과거 압축성장 과정에서 나타났던 잘못된 관행으로부터 서서히 단절해나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29일 삼성에버랜드의 전환사채 관련 법원의 판결 역시 과거와 현재의 기업경영 방식을 서로 비교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다. 11년 전인 96년 12월3일 에버랜드는 전환사채(CB) 125만4,000여주를 3자 배정방식으로 이건희 회장의 2세들에게 배정했다. 4년 반이 지난 2000년 법학교수 43명이 ‘헐값발행’이라며 고발한 후 7년여 동안 치열한 법리다툼이 이어졌다. 2005년 10월4일 1심은 유죄를 인정했고, 29일 2심 역시 고발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이제 대법원에서의 최종 판결만 남아 있다. 삼성그룹의 항변은 이렇다. 당시에는 “기업들이 많이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2심 선고를 들은 삼성의 한 고위 관계자는 “당시에 합법적이라고 하니까 그렇게 했지 불법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렇게 했겠냐”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삼성에버랜드 사건을 보노라면 과거와 현재와의 큰 간극이 여실히 읽힌다. 삼성 측의 말처럼 과거에는 그런 식으로 CB를 배정해도 별 문제가 안 됐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기업을 둘러싼 환경이 바뀌었고 국민들의 인식도 변해버렸다. 그 과정 중에 삼성이 ‘시범케이스’로 딱 걸렸다. 만약 삼성그룹이 지금 11년 전과 같은 방법으로 CB 발행을 또 할 수 있을까. 무언가 조금이라도 논란이 될 소지가 있는 방식으로 경영권 승계를 하려 할까.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이런 점에서 삼성에버랜드 CB 발행에 대한 문제제기는 이미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도 ‘남는 장사’가 됐다. 이 사건으로 한국 대기업 집단의 경영권 승계 방향이 좀더 선진화됐다고 평가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된 게 아닌가 싶다. 굳이 끝까지 그 누군가를 지목해 단죄 내지 복수를 해야겠다는 ‘노무현’식 과거청산에 국민 대부분은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이보다는 대승적 견지에서 과거와 단절했거나 그러려고 노력하는 기업들에 기회를 주는 게 옳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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