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의 유행을 이끌던 이탈리아 패션산업이 마이너리그로 추락했습니다."
이탈리아 명품업체 프라다의 수석 디자이너인 미우치아 프라다는 30일 일간지 라리퍼블리카와의 인터뷰에서 "이제 '메이드 인 이탈리아'라는 라벨이 국제사회에서 갖는 특권이 사라졌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탈리아를 덮친 재정위기로 패션업체들이 줄줄이 해외 기업에 인수되면서 전세계 유행을 이끌던 디자이너와 영업 노하우 등이 외국으로 빠져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7월에는 정교한 웨딩드레스 등으로 유명해 미국의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과 영화배우 오드리 햅번이 즐겨 찾던 브랜드인 발렌티노를 카타르 왕실이 7억유로에 매입했다. 같은 달 한국의 신원그룹도 65년 전통을 가진 이탈리아의 최고급 악어ㆍ타조가죽 제품 브랜드 로메오 산타마리아 지분 100%를 사들였고 지난해에는 이랜드가 가방 제조업체인 만다리나덕을 700억원에 인수했다. 프랑스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NH)는 보석 브랜드인 불가리를 23억유로에 인수했다.
덩달아 패션1번지라는 이탈리아의 명성도 떨어지고 있다. 독일 명품업체인 질샌더의 이탈리아 법인 디자이너를 맡았던 라프 시몬스는 최근 회사를 떠나 프랑스 업체인 크리스찬디올로 자리를 옮겨 현재 파리에서 근무하고 있다. 이탈리아인인 프라다조차 "패션쇼는 최적의 입지를 찾아 어디든지 옮겨가며 열릴 수 있는 것"이라며 올해 패션쇼를 밀라노가 아닌 파리에서 열기로 결정했다.
이처럼 이탈리아 경제의 중추를 담당하는 패션산업이 뿌리째 흔들리면서 국가경제도 더 큰 위기의 늪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유명 브랜드와 유능한 디자이너를 다른 나라에 빼앗기는 등 패션산업의 주요 기반이 사라지면서 장기적으로 재정위기를 벗어나더라도 더 이상 패션산업이 국가경제를 이끌기 힘들다는 것이다. 현재 이탈리아 경제에서 의류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30%대에 달한다. 관광ㆍ제조업과 함께 국가경제의 주요 축이다.
이 같은 이탈리아 패션산업의 붕괴는 재정적자와 글로벌 불황이 주요 원인이다. 이탈리아 명품업체들은 현재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판매고에 시달리고 있다. 또 자금을 조달하려고 해도 은행들이 대출을 꺼리면서 경영난에 빠진 기업들은 해외에 구조신호를 보내고 있다. 일례로 지난해 이탈리아로 향한 외국인직접투자(FDI)는 66억달러로 1년 전보다 8배나 늘어났다. 국민의 생활이 어려워지자 명품업계에 대한 시선이 따가워진 것도 한 원인으로 꼽힌다. 프라다는 "우리는 막대한 수출과 일자리를 창출하는 명품산업을 경시하는 촌스러운 사회에 살고 있다"고 한탄했다.
반면 중국 등 신흥국은 이탈리아 명품업체를 헐값에 사들일 수 있는 호기를 맞았다. 경영난에 빠진 기업들이 싼 값에 매물로 나온데다 유로화가 약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신흥국은 독자 브랜드와 영업망을 키우기보다 단숨에 글로벌 패션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이탈리아 명품업체 인수에 적극 나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