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3월의 눈'은 국내 연극계 최고령 현역으로 활약하고 원로배우 장민호(88)와 백성희(87)에 대한 헌정(獻呈) 무대로 준비됐던 공연이다. 국립극단이 서울 용산구 서계동으로 옮기면서 공연장 이름을 '백성희장민호극장'이라고 명명할 정도로 두 사람은 '연극계의 살아있는 역사'로 불려왔다. 장민호씨가 24년생, 백성희씨가 25년생. 두 원로배우의 헌정 공연이란 의미가 있는 만큼 손진책 국립극단 예술감독이 직접 기획하고 연출한 작품이기도 하다.
지난 1일부터 앵콜공연에 들어간 이 연극은 원로배우 3명의 연기투혼이 알려지면서 새삼 화제가 되고 있다. 장민호씨가 고령탓에 쓰러져 장기요양을 하고 있는 와중에 최근 백성희씨 마저 공연중 뼈가 금이 갈 정도로 다친 것. 백씨는 그러나 현재 의상안에 붕대를 감은 채 공연을 계속하고 있다.
공연중 쓰러진 장민호씨 대신 투입된 인물은 배우 박근형(72)이다. 그는 장민호씨가 하던 '장오' 역을 맡아 배우 백성희와 부부로 호흡을 맞추고 있다.
연극은 재개발 열풍에 떠밀려 평생 살아온 낡은 한옥을 떠나야 하는 노부부의 일상을 그린 작품이다. 일제시대부터 해방과 6ㆍ25 전쟁까지 겪어내며 이 집을 지켜온 노부부는 손자의 빚을 대신 갚아주느라 한옥을 내놓기로 한다. 근ㆍ현대사를 묵묵히 견뎌온 집과의 이별을 앞두고 지나간 세월을 담담히 풀어놓는 노부부의 대화가 여운을 남긴다. 금방 녹는 '3월의 눈'처럼 연극은 우리네 삶의 여정을 담담히 그리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 3월 국립극단이 '백성희장민호극장' 개관작으로 공연해 큰 호평을 얻었던 그 연극이다.
이 연극은 박근형씨가 20년만에 연극에 복귀한 작품이라는 의미도 더해져 있다. 그는 1992년 연극 '두 남자 두 여자' 이후 주로 TV와 영화에서 활동해왔다. 장민호씨를 대신하게 된 박근형의 출연은 백씨의 전화 한 통으로 이뤄졌다는 후문이다. 백성희와 박근형은 연극 '만선'(1964) '갈매기'(1966) 등에 함께 출연하며 1960년대 국립극단을 이끌었다. 박씨는 "연극을 하면서 제일 존경했던 분과 함께한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라고 했다. 18일까지 서울 서계동에 위치한 백성희장민호 극장에서 공연된다. 박근형 백성희 커플과 오영수 박혜진 커플이 번갈아 연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