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12월11일] 호너 & 하모니카


[오늘의 경제소사/12월11일] 호너 & 하모니카 권홍우 서부영화의 잔치에서는 꼭 이게 나왔다. 한국에도 아주 많았다. 뭘까. 하모니카다. 전쟁터에서도 잠시 총성이 멎으면 양측 병사들은 참호에서 하모니카를 불었다. 그만큼 흔했다. 싸고 배우기 쉽다는 하모니카의 장점을 널리 알린 주인공은 마티아스 호너(Matthias Hohner). 1833년 독일 남부의 시골마을 토로싱겐에서 농부 겸 직물공의 아들로 태어나 평생을 기술개발과 경영혁신, 신시장 개척에 바친 사람이다. 시계공으로 일하던 호너의 하모니카와 첫 인연은 절도.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하모니카가 판로를 넓혀가던 시절, 남몰래 작업장에 들어가 제조기술을 빼낸 그는 1857년 공장을 차렸다. 첫해 생산량은 650개. 품질이 좋았던 덕에 전량을 팔았지만 판매는 제자리를 맴돌았다. 대형업자들이 독일시장을 좌지우지했기 때문이다. 호너의 대안은 수출. 미국시장에서 대박이 터져 1885년 생산 100만개선을 넘었다. 증기기관도 도입했다. 악기 공장에 증기설비를 깐 것은 호너가 처음이다. 호너의 성공 비결은 브랜드 이미지와 광고. 소비자가 친숙하게 느낄만한 상표이름을 정하고 적극적인 홍보전략을 펼쳐 호너의 하모니카는 경쟁사와 비슷한 품질에도 보다 비싼 가격에 팔렸다. 1902년 12월11일 호너가 사망할 당시에는 생산량 300만개 중 5분의4이 미국에서 팔렸다. 창업자 사망 후 호너사의 명암은 독일 산업사와 판박이 격이다. 1ㆍ2차 대전을 거치면서도 세계 1위를 지켜온 호너사는 60년대 이후 일본 제품에 밀려 사양길을 걸었다. 보조금으로 연명하던 회사의 경영권도 1997년 대만에 넘어갔다. 여전히 ‘명품 하모니카’로 손꼽히지만 호너사의 장래는 불투명하다. 과거의 혁신에 안주해 내일을 위한 혁신을 게을리한 탓이다. 입력시간 : 2006/12/10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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