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동남아 통화위기 자생 불능상태

◎외환고 바닥나 시장개입 한계봉착/초긴축조건 IMF지원 수용 불가피동남아 통화위기가 갈수록 고조되면서 동남아국가들의 경제기반이 붕괴될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이에따라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일본 등의 외부지원만이 유일한 해결책으로 지목받고 있다. 통화위기의 진앙지인 태국정부가 28일 IMF에 긴급자금 지원을 요청하고 경제위기 종합타개책을 마련중인 것도 사태의 심각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특히 지난주의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외무장관회의와 중국 상해에서 개최된 아·태지역 11개국 중앙은행총재회담(상해 11)의 공동성명이 당초 예상과 달리 『통화안정이 중요하다』는 의례적인 수준에 머물러 이제 자력 회복을 기대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에 본부를 둔 헤지펀드들은 상해11 회담 결과를 지켜보며 지난주에는 투매를 중단, 동남아 통화들이 다소 안정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회담 결과가 신통치 않은 만큼 외환투기꾼들의 공세가 다시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 동남아통화의 하락세가 이번주에도 계속될 것으로 외환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영국의 금융시장정보분석가인 이샤크 이스마일은 『앞으로 동남아 외환시장은 역내 중앙은행들의 통화안정의지를 시험하게 될 것』이라면서 『이번주에도 동남아 통화의 환율이 심한 변동을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실제로 동남아 현지에서는 지금 당장 외국의 지원을 받지 못한다면 경제기조 자체가 위협받는 심각한 상황이 닥쳐올 것으로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태국 총리실의 푸사나 프리마노크 사무차장은 『태국 경제가 심각한 위기상황에 직면해 있으며 신속하고도 정확한 수습책이 제시되지 않으면 불황과 함께 경제 전체가 무너져 내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동남아 중앙은행들이 막대한 자금을 투입, 시장 개입에 나서면서 외환보유액이 급속히 고갈됐다는 사실도 자체적인 해결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에따라 IMF 같은 외부 지원이야말로 더이상의 경제 붕괴를 막아낼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라는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IMF에 손을 내밀지 않겠다며 한사코 버티던 태국마저 필리핀에 이어 28일 IMF에 긴급자금 지원을 공식 요청했다. 구체적인 조건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결국 엄격한 가이드라인을 준수해야만 하는 쓴약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것이다. IMF는 그동안 정부지출 삭감, 세수 확대 등 엄격한 전제조건을 제시하면서 태국정부를 곤혹스럽게 만들어 왔다. 하지만 경제 운영에서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말레이시아의 외무장관은 28일 환투기꾼들을 겨냥해 『국제범죄의 극치이자 악랄한 파괴행위』라고 맹비난했다. 차마 드러내지 못하던 다른 정부의 속마음을 대변해주는 총대역할을 떠맡은 셈이지만 당장 한푼이 아쉬운 국가들로선 쉽지 않은 일이다. 태국정부는 경제 회복을 위해 모두 2백억달러의 원조가 필요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그 규모를 4백억달러까지 늘려잡고 있다. 이와관련 태국측은 시티은행을 비롯한 외국은행들에 금융시장 개방폭을 한층 확대하는 조건으로 60억달러의 자금을 지원해줄 것을 요청해놓고 있다. 일본정부의 움직임도 관심거리다. 현재로서는 일본이 IMF를 통한 지원방식을 택할 것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그러나 정작 일본측은 『동남아의 금융 혼란은 위기상황으로 볼 수 없다』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어 동남아국가들을 초조하게 만들고 있다. 태국을 비롯한 동남아국가들은 당장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외부 십자군을 불러들일 수도 있지만 경제회생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정상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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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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