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발언대/9월 18일] 더 이상 정겹지 않은 '전기세'

얼마 전 모 방송의 주말드라마에서 ‘전기세’라는 말이 나와 반갑기도 하면서 당황스러웠던 적이 있다. ‘전기세’는 고향집 우리 어머니들이 사용하는 푸근하고 정겨운 표현이다. 하지만 한국전력공사(한전)에 다니는 직원으로서는 동의하고 싶지 않은 표현이기도 하다. 아마도 전기가 물과 공기에 비교되는 필수재로 여겨지면서 대체수단이 없어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 때문에 요금이 아닌 세금으로 인식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엄밀히 따져볼 때 세금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재원조달을 위해 국민에게 징수하는 수입으로 개별적인 대가를 지급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대가가 요구되는 민간경제의 수입, 즉 요금과 구별된다. 전기요금은 소비자가 한 달 동안 사용한 전기라는 상품의 사용량에 따라 그 반대급부로 납부하는 말 그대로 자신이 얻은 효용의 대가로 지불하는 것이다. 그래서 ‘전기세’는 틀린 말이다. 이게 뭐가 중요하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세금은 받는 것 없이 준다는 느낌이 들지만 요금은 내가 사용한 물건 또는 용역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무의식 중에 각인 되는 것이다. 즉 ‘전기세’는 받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준다는 느낌이 들어 본인이 사용한 전력량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세금이 많이 나왔다고 느껴지게 하기도 한다. 이러한 문제는 언론에도 상당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드라마ㆍ라디오ㆍ신문 심지어 시사프로에서도 ‘전기세’라는 표현을 종종 접할 수 있다. 언론매체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바른 용어를 가르쳐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에 바른 용어를 사용해 전기요금이 세금이라는 불필요한 오해를 벗겨줬으면 한다. 세계 각국의 전기요금 지수는 한국을 100으로 볼 때 미국이 107, 영국 148, 프랑스 148, 일본이 170정도다. 우리 전기요금은 국제적으로도 저렴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또 통계청의 지난 2006년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구당 월 평균 전기요금은 3만8,000원인 반면 교통비 6만3,000원, 통신비는 무려 13만5,000원을 지출한다. 교통비나 통신비의 경우 수요자 스스로가 대체수단을 선택할 수 있지만 전기는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싼 전기요금을 세금으로 인식하고 막연히 비싸게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최근 한전은 석탄ㆍ석유 등 연료가격이 대폭 상승했음에도 불구하고 전기요금은 작년부터 동결돼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기세’라는 말이 더 이상 정겹게만 들리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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