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1년에 10번 벨지안로서 담금질… 볼보·벤츠 못잖은 '엑시언트' 탄생

폭스바겐 사태 속 현대차 남양연구소 상용차 개발 과정 언론 첫 공개

지난 25일 경기도 화성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에서 연구소 직원들이 현대차 대형트럭 '엑시언트'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제공=현대차

개발기간만 3년… 2000억 투자

지능형 전조등 시스템 첫 적용… 무시동 에어컨까지 탑재 눈길


상용차 부문 2020년 글로벌 톱 10… 연구인력 1000명까지 확충 계획

9월 초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에서 열린 신차 품평회. 현대차의 신형 에쿠스·아반떼와 기아차의 스포티지 등 현대·기아차가 선보일 신차들이 연구소 안에 늘어섰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5개의 신차 가운데 대형트럭 '엑시언트'로 가장 먼저 향했다. 현대차를 대표하는 대형트럭을 구석구석 둘러본 정 회장은 "현대차가 크기 위해서는 상용차를 많이 팔아야 한다"고 말했다.

3주가 흐른 지난 25일 경기도 화성에 있는 남양연구소에서 현대차가 최근 가장 애착을 갖고 있는 '엑시언트'에 직접 올라탔다. 현대차가 남양연구소의 상용차 부문 개발 과정을 언론에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구소 내 마련된 주행 시험로를 달리는 동안 8,900㎏의 차체와 약 3톤의 컨테이너를 합해 4톤에 육박하는 거대한 차량이 달리고 있다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주행감이 좋았다. 차체에 장착된 4가지 서스펜션이 조화를 이루며 장시간 운전에도 피로도를 최소로 줄이려는 노력이 느껴졌다. 현행법상 허락되는 최대속도인 90㎞/h까지 속도를 내봐도 차량 밖에서 들리는 시끄러운 엔진 소리가 차 내부까지 거의 전해지지 않았다. 김정훈 현대차 상용시험개발팀 파트장은 "현대차의 상용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며 "현대차가 유럽형 독자 고유모델로 개발한 '엑시언트'는 우리의 기술력을 상징"이라고 강조했다.


'엑시언트'는 1978년 미쓰비시의 기술력에 의탁해 탄생한 '마루 H' 이후 35년 만에 현대차가 개발에 성공한 대형트럭이다. 상용부문에서는 '에쿠스'와 같은 존재를 수십 년 만에 독자모델로 개발해낸 만큼 의미가 남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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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럭판 에쿠스'로 불리는 '엑시언트'는 개발기간 3년, 투자비 2,000억원을 들여 2013년 10월 세상에 공개됐지만 볼보·스카니아·벤츠·만트럭 등 유럽 브랜드의 아성을 한순간에 깰 수는 없었다. 2006년 선보인 '트라고'에 실망한 고객들이 현대차를 불신한 것. 길게는 24시간씩 4톤에 달하는 무게를 견디며 달리기 위해서는 '내구성'이 생명이다. '엑시언트'의 이전 모델인 '트라고'는 유럽차에 길들여진 소비자들의 눈높이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집 한 채 가격과 맞먹는 1억8,000만원짜리 차량을 구매하는 고객들은 신중할 수밖에 없다.

현대차는 2년간 소비자들의 인식을 바꾸기로 계획했다. 1년에 10번씩 대관령의 혹한 도로와 차를 박살 낼 만큼 험하다는 남양연구소의 주행시험로 '벨지안로'에서 담금질한 '엑시언트'의 진가가 전해질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다음달이면 현대차가 계획한 만 2년이 된다. 조영환 상용평가실장(이사)은 "'실패에서 답을 찾는다'는 생각으로 스프링과 프레임 등 내구품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며 "내구성은 물론 승용차에서나 볼 수 있는 첨단기술까지 장착해 소비자들이 현대차의 기술을 재평가하고 있다"고 자신했다.

다음달 15일께 국내 최초로 선보이는 미니버스 '쏠라티'도 이곳에서 탄생했다. 10년 만에 부활한 15인승 미니버스 '쏠라티'는 양웅철 현대·기아차 연구개발 총괄 부회장이 "레저용차량(RV)을 개발하는 다른 사람들이 '쏠라티'를 보고 배워야 한다"고 말할 만큼 높은 품질을 갖춘 것으로 알려진다.

남양연구소는 특히 상용차의 엔진부터 완성차까지 한 곳에서 개발하는 전 세계 몇 안 되는 연구소다. 이곳에서 탄생한 '엑시언트'는 현대차가 최초로 적용한 '지능형 전조등 시스템(AFLS)을 비롯해 8인치 내비게이션, 후방 감지 카메라, 타이어 공기압 모니터링 등 승용차 못지않은 기술들이 적용됐다. 여름철 이동 중 차 안에 마련된 매트리스에서 편하게 잘 수 있도록 6시간 이상 배터리로 가동되는 무시동 에어컨도 탑재돼있다.

현대차 상용차 연구실은 모든 실험실이 승용차보다 4~5배 이상 크다. 125m의 버스를 테스트하려면 거대한 실험 공간이 필요하다. 남양연구소가 보유한 무향실·로드시뮬레이터 등이 동양 최대 규모로 꼽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1년 내내 도로 위를 질주하는 대형 트럭의 특성상 영하 40도부터 영상 60도까지 다양한 온도변화와 거센 바람들을 견디는 실차 환경챔버를 거쳐 더욱 단단해진다.

현대차는 최근 전주공장에 있던 연구인력을 남양연구소로 통합해 상용차 부문에서 오는 2020년까지 글로벌 10위 업체로 도약하기 위해 총력을 가하고 있다. 내년 완공을 목표로 상용 부문 인력들이 한꺼번에 사용할 수 있는 대규모 상용 개발동 공사도 한창 진행되고 있다. 현재 약 750명의 연구인력을 이른 시일 안에 1,000명까지 늘리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조 실장은 "합쳐진 연구인력은 기존 1개 센터를 2개의 센터로 나눠 조직을 2배로 확대했다"며 "고가의 연구개발 장비도 최신 설비로 교체한다"고 설명했다.


박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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