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사라지는 동물원


아시아 코끼리 '완다'와 '윙키'에게 10년 전 미국 디트로이트 동물원에서의 경험은 악몽의 연속이었다. 드넓은 초원에서 무리 지어 사는 대신 좁디좁은 공간에 갇혀 만성 관절염과 합병증의 고통에 시달렸고 이 때문에 온종일 발에 약봉지를 주렁주렁 매달고 다녀야 했다. 영하 20도 밑으로 내려가는 게 보통인 디트로이트의 혹한 역시 이 열대 동물들에게는 견디기 힘든 스트레스였을 터다. 지난 2005년 4월8일 창살로 된 감옥에서 벗어나 12만㎡에 달하는 캘리포니아 샌안드레아스 야생동물 보호구역으로 옮겨진 두 마리 코끼리는 50여년 만에 생전 처음 '진짜 코끼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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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 때문에 고통을 받은 것은 동물만이 아니었다. 1752년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란츠 1세는 여왕 마리아 테레지아를 위해 빈의 쇤브룬궁전 내 정원에 근대적 의미의 동물원을 처음 만들었다. 하지만 황제의 권위를 높이고 귀족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서는 희귀 동식물들이 더 필요했다. 아프리카로, 아메리카 신대륙으로 원정대가 떠났다. 하지만 이들이 가져온 것에는 동식물들 외에도 원주민들로부터 약탈한 금은보화가 한가득이었다. 1900년대에는 독일 함부르크 동물원인 티어파크 하겐베크의 소유주 카를 하겐베크가 동물을 구하기 힘들어지자 핀란드 원주민을 데려와 사람들에게 구경시키는 일도 있었다. 당시 동물원은 식민지배의 상징물이었고 백인과 얼굴색, 체형이 다른 원주민은 짐승 취급을 받는 게 당연시됐다. 우리 역시 일제강점기에 창경궁이 무려 82년간 동식물원으로 사용되는 치욕을 당하기도 했다.

고통의 동물원을 없애려는 시도가 코스타리카에서 시작됐다. 코스타리카는 앞으로 10년 안에 자국 내의 모든 동물원을 폐쇄하고 동물들을 야생으로 돌려보내기로 했다. 야생동물을 존중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어쩌면 식민지배의 아픈 과거도 소멸하기 바랐을지 모른다. 동물원이 사라지면서 창살 앞의 야만도 함께 가져가기 바라는 건 지나친 욕심이려나. /송영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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