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6일 박근혜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통해 집권 2년차는 국가와 국민이 도약하는 한 해가 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달 말 구체적인 액션플랜 발표를 앞두고 정부는 막바지 작업에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경제혁신'은 과거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개발'처럼 관료가 주도할 수 없다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13일 서울경제신문이 경제학자 50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오히려 정부는 혁신을 가로막고 있는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됐다. 응답자들은 '말로는 혁신을 외치면서도 여전히 미흡한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무려 70%가 '변화하지 않는 관료사회'라고 지적했다. '대기업의 기득권 유지(16%)' '입시 위주의 교육(6%)' 등은 적었다. 경직된 '관치(官治)'의 틀로 경제를 계획하고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위험할 수 있다는 경고다.
◇혁신, 정부나 정치권 아닌 시장이 주도=블룸버그는 최근 한국을 가장 혁신적인 국가 1위로 꼽았다. 하지만 국내 학자들이 보는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혁신점수는 그리 높지 않다. 경제학자들은 한국의 혁신점수를 평균 62점으로 평가했다. 박근혜 정부의 지난 1년간 경제적 성과(49점)에 비하면 높지만 만족스러운 수준이 아니다.
학자들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혁신이 필요한 분야로 '정치 등 상부구조(54%)'를 꼽았고 '경제생태계(20%)' '노사관계(16%)' '사회갈등(8%)' '지역균형발전(2%)' 등이 뒤를 이었다. 특히 정치는 고질적인 '갈등의 진원지'로 꼽혔다. 한국 사회가 혁신을 이루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정치의 선진화(64%)'가 필요한 것으로 지적됐다.
경제 분야의 혁신에 있어서 가장 시급한 것은 '규제개혁(38%)'이 꼽혔다. 규제를 틀어쥐고 있는 정부부터 권한을 내려놓으라는 주문이다. 역대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하나같이 규제개혁을 부르짖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했던 사례를 참조하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중소기업과 규제개혁에 초점 맞춰야=경제학자들은 한국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높이는 원동력으로 단연 중소기업을 꼽았다. 대기업에 과거와 같은 성장세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설문에서 경제학자들은 한국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높이기 위해 '중소기업 육성(34%)'에 초점을 맞추라고 조언했다.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단계별 지원수단을 체계화하는 한편 제조업과 서비스업을 접목시켜 다양한 일자리를 만들고 국가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서비스업 규제개혁(30%)' '노동시장 개혁(26%)' 등도 뒤를 이었다.
이는 정부가 이달 말 발표한 '경제혁신 3개년 계획'과도 일맥상통한다. 정부는 '경제혁신 3개년 계획'에서 창조경제, 내수활성화, 공공기관 개혁 등을 꼽았다.
설문응답자들은 '창조경제 구현을 위해 가장 필요한 정책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융복합 등 규제완화(42%)' '신산업 육성(20%)' '서비스업 규제개혁(14%)' 등을 꼽았다. 응답자 중 한 대학교수는 "특히 창의산업 분야에 디자이너 등 비(非)기술인을 참여시켜 융합형 창업을 육성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내수활성화를 위해서는 '고용확대(50%)'가 절대적인 과제로 지목됐으며 '부동산 활성화(22%)'와 '가계부채 해결(22%)'이 나란히 2위를 차지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공공기관 개혁에 대해 경제학자들은 '부채감축(24%)'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특히 정부가 예산부족을 핑계로 공기업에 국가사업을 떠넘기는 관행을 근절하기 위해 공기업이 추진하는 사업의 투명성을 높여야 할 것이라고 지적됐다.
고질적인 '낙하산 인사(22%)'와 이로 인한 '노사 유착 문제 해결(22%)' 등을 해결하기 위해 공공기관 지배구조 역시 개혁해야 한다고 봤다. 이 밖에 '공공기관 역할 재조정(14%)' '공공기관 민영화(8%)' 등도 검토돼야 할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들은 "기관의 전문성을 강화하고 정책시행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공공기관 개혁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