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12월21일] 디즈레일리


‘세상에는 세 가지 거짓말이 있다. 거짓말과 지독한 거짓말, 그리고 통계.’ 소설가 출신 영국 총리 디즈레일리(Benjamin Disraeli) 어록 중 일부다. 통계를 불신했다지만 그는 숫자에 밝았다. 세세한 통계를 통째로 암기해 질의에 답변했다. 유대인 출신인 그가 영국 총리에 오른 두 가지 비결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 남달리 비상한 머리와 치밀한 준비다. 다른 하나는 돈. 1804년 12월21일 태어난 그는 부친의 재산과 기독교로의 개종 덕에 명문고교를 다니고 마음껏 해외여행도 누렸다. 부친은 두번째 결혼에서 얻은 지참금으로 주식투자에 성공한 인물. 디즈레일리가 소설을 쓰고 스무살 나이에 일간신문 창간을 추진하며 정계에 입문(34세)한 것도 집안의 재력 덕분이다. 디즈레일리 자신도 12세 연상인 돈 많은 과부와의 결혼을 통해 신문 창간 실패 당시 떠안은 채무를 덜었다. 정치인으로서 그의 특징은 싸움꾼. 번번이 당론에 반대하는 사조직을 이끌며 세를 불린 끝에 두 차례(1868, 1874~80) 총리에 지명된 그는 분쟁을 통해 자유무역을 강요하고 영국의 이권 극대화에 전력한 인물로 꼽힌다. 남편 앨버트공과 사별한뒤 윈저궁에 10년간 칩거하던 빅토리아 여왕을 국정에 복귀시킨 것도 업적으로 꼽힌다. 영국의 상징으로서 왕실의 존재가 이때부터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유대인이면서도 가장 영국적인 총리’‘제국주의자’로 불리는 디즈레일리를 뒷받침한 것은 유대 자본. 수에즈 운하 매입 등 중요한 고비를 맞을 때마다 로스차일드 등 유대계가 자본을 댔다. 1881년 세상을 떠난 디즈레일리는 이스라엘의 예고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이름 철자에서 앞뒤로 한 자(d·i)씩 만 빼면‘이스라엘(Israel)’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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