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고유가시대…감춰진 2%를 찾아라] <1> '지상유전' 창조하기

"원유정제 고도화 설비 확충을"<br>값싼 중질유 고수익 경질유로 바꾸는 '땅위의 유전'<br>국내 정유4社 설비 신·증설에 6兆이상 투자 계획<br>효율 극대화로 생산능력 늘리는 '리뱀핑'도 활발



“지금의 고유가 상황은 석유 정제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 부문이 해소되지 않는 한 고유가 추세는 오는 2008년까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모하메드 알리포 제디ㆍOPEC 석유시장 분석실장) 지난해 9월에 방한했던 제디 석유시장 분석실장은 현재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고유가 파동의 가장 큰 원인으로 원유 생산량이 아닌 생산된 원유를 소비자 입맛에 맞춰 가공하는 정제설비의 부족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국내 정유업계의 고도화시설비율은 21.5%로 중국의 32.6%, 일본의 39.8%보다 뒤처져 있다. 미국과 캐나다의 고도화 비율인 77.1%, 64.7%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에너지원을 석유에 절대 의존하는 우리나라로서는 제디 분석실장의 이 같은 지적이 새로운 의미로 와 닿는다. 원유 정제능력 확대는 한마디로 지상에 유전을 만드는 것. 고유가 시대를 맞아 국가 및 기업단위의 치열한 ‘지상유전개발 전쟁’이 펼쳐지고 있다. 이 시각 현재 국내 정유업계의 움직임들을 추적해 이를 시리즈로 전달한다. “2010년까지 3조5,740억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합니다.” 지금부터 두 달쯤 전인 지난 4월17일 오후 4시를 조금 넘긴 시각. 여의도 63빌딩 53층 S-Oil 회의실에선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 본사와 화상회의로 이사회를 진행하던 김선동 이사회 의장이 의사봉을 힘차게 두드렸다. 오랫동안 국내 투자를 멈췄던 S-Oil이 충남 대산공단에 원유정제시설과 중질유분해시설을 건설하는 대규모 설비투자 계획을 결의했다. ‘지상 유전 개발 프로젝트’ 정유업계는 정제시설 고도화 작업을 이렇게 부른다. S-Oil뿐 아니라 SK㈜와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업체 모두가 지상유전을 개발하기 위해 정제시설 고도화 작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 국내 정유 4사가 신ㆍ증설하려는 투자규모는 줄잡아 6조원을 훌쩍 넘는다. 업계 한 관계자는 “고유가가 지속될수록 국가단위 또는 기업단위로 상업성이 높은 석유제품 확보전쟁은 치열해질 수 밖에 없다”며 “국내 정유업체들은 당분간 지상유전 건설에 사운을 걸 것”이라고 진단했다. ◇고도화설비 두배로 늘려라= S-Oil의 대규모 투자결정은 고유가 시대를 맞은 국내 정유사들이 국제 원유시장의 변동에 어떻게 대처해가려는 가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통상 원유정제 마진은 베럴당 1달러 내외. 산유국의 변덕이나, 국제 원유시장의 가격 균형을 뒤흔드는 돌발변수가 발생할 경우 정유사들은 떼돈을 벌기도 하지만 한순간 경영실적이 적자로 돌아설 수 있다. 이는 국내 정유사들이 다른 어떤 나라의 정유업체보다 더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구축해 놓을 필요가 그만큼 높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지상유전’으로 불리는 고도화설비는 원유를 1차 정제한 뒤 남는 저가 중질유인 벙커-C를 다시 처리해 값비싼 휘발유나 등ㆍ경유로 탈바꿈시키는 마법사다. 값싼 중질유를 고수익의 경질유로 바꿔주는 만큼 고도화설비는 정유사의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SK㈜ 관계자는 “고도화설비인 하이드로 크래커(Hydro Cracker, 수소첨가 분해공정)는 배럴당 10달러 이상, FCC(Fluidized Catalytic Crackingㆍ중질유 촉매분해공정)는 배럴당 16달러 이상의 부가가가치를 낳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정유업체들이 현재 계획하고 있는 고도화설비 증설 규모는 하루 35만4,000배럴가량. 현재 수준보다 정확하게 두배 정도 더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SK㈜는 울산공장 내에 4만5,000배럴 규모의 하이드로 크래커와 5만6,000배럴의 FCC을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SK㈜는 총 1조6,000억원을 투자, 일일 6만 배럴 규모의 중질유분해설비도 확충할 예정이다. GS칼텍스 역시 단일공장으로는 세계 최대규모인 일일 9만배럴의 RFCC(유동상촉매분해공정)와는 1조3,000억원을 투입해 5만5,000배럴 규모의 HOU(수첨분해탈황공정)의 기반공사를 진행 중이다. ◇“기존 설비도 효율적으로”= 지상유전을 개발하는 것은 고도화설비 구축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기존 설비에서 보다 많은 석유제품을 생산해낼 수 있다면 그것 역시 또 다른 형태의 지상유전 개발이다. GS칼텍스 여수공장의 RFCC팀은 오는 2007년말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이 때쯤이면 고도화설비중 하나인 HOU가 완공될 것이고, 덕분에 RFCC(유동상촉매분해공정)의 효율이 한단계 업그레이드되기 때문이다. 회사 관계자는 “현재 신설 중인 감압증류시설이 완공되면 여기서 나오는 추출물(VGOㆍVacuum Gas Oil)를 고도화설비에 투입해 하루 생산능력을 1만배럴 더 늘릴 수 있게 된다”고 귀띔했다. GS칼텍스 여수공장은 이에 앞서 지난 95년 7만배럴 규모로 가동을 시작한 RFCC를 네차례의 공정개선을 거쳐 9만배럴로 생산능력을 확충, 정유업계 ‘리뱀핑의 귀재‘로 통한다. 설비와 공정 개선을 통해 당초 생산능력보다 더 많이 생산하는 게 리뱀핑(revamping:혁신)이다. SK㈜ 역시 BTX공장 증설이 끝나기가 무섭게 리뱀핑 준비에 돌입했다. 지난 2004년부터 2,300억원을 투자, 총 생산규모를 200만톤에서 269만톤으로 대폭 늘렸지만 수익이 짭짤한 BTX 생산을 더 늘리기 위해 바로 공정개선에 나선 것. SK㈜의 BTX 증설로 1위 자리를 빼앗긴 GS칼텍스 역시 내년까지 현재 220만톤인 생산능력을 270만톤으로 늘리는 리뱀핑을 진행중이다. 현대오일뱅크도 스페인의 정유ㆍ석유화학사인 셉사(CEPSA)와 합작 투자해 연산 60만톤 규모의 방향족(BTX) 설비를 증설키로 해 이 같은 BTX 증설경쟁에 합류했다. 어둠이 짙을수록 불은 밝은 법. 사상 최악의 고유가 시대가 지속되면서 ‘지상유전’ 개발을 위한 정유업계의 노력은 더욱 불을 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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