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우유전쟁:2(최명재의 인생도전)

◎87년 9월 첫 제품싣고 슈퍼·백화점 노크/가는 곳마다 “사절”업계 보이지 않는 손 절감지난 87년 9월14일 새벽, 동이 트기 전의 어두운 영동고속도로를 바쁘게 달리는 작은 트럭 한대가 있었다. 트럭에는 「파스퇴르우유」라는 상표를 단 우유의 첫 제품이 실려 있었다. 운전수 옆 자리에는 최명재 회장(당시 사장)이 앉아 있었다. 이란에서 돈을 벌어 강원도 산골에 목장을 시작하여 낙농업을 경영하는 농부가 될 것을 꿈꾸었던 그가 「진짜 우유」를 만난 것을 인연으로 대변신을 단행, 식품산업의 제조업자가 되어 서울로 진군하는 길이었다. 이 때만 해도 그는 자신이 싣고 가는 이 우유가 이 땅의 유가공업계에 대지진을 몰고 오는 기폭제가 되리라는 것은 예상치 못하고 있었다. 일본의 경우처럼 「어떤 우유가 진짜 우유냐」하는 논쟁은 일어나겠지만 결국은 쓸모없는 논쟁으로 세월을 보내면서 기존의 고온처리우유 시장속에서 소규모 생산업자로 외롭게 버티며 명맥을 유지하게 될 것이라는 예감을 지니고 있었다. 그보다는 지금 당장 눈 앞의 문제는 소비자들에게 저온처리 우유를 어떻게 인식시키고 판로를 개척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종래의 프레시 우유보다 가격이 두배나 비싼 파스퇴르우유를 과연 누가 사먹을 것인가 하는 판촉의 문제가 절벽처럼 눈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최회장은 생산을 개시하기 전에 시장조사를 하여 이 새로운 우유의 상륙에 필요한 교두보를 어디에 둘 것인가를 정해놓았다. 서울 강남 일대의 아파트촌이 그 전략적 요충이었다. 이미 압구정동을 중심으로 한 고급 아파트촌은 경제성장에 발을 맞추어 이 땅에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여 전파하는 산실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문화적 충돌 때문에 가끔 경원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급성장하는 국내 산업의 발달과 생산력에 걸맞는 소비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는 곳이었다. 그와 함께 서울 전역의 백화점도 일차적인 상륙지점으로 잡았다. 슈퍼마켓이나 큰 식품가게들도 중요한 판매처였다. 그러나 슈퍼마켓이나 식품가게들은 하나같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이 새로운 우유의 판매를 사절했다. 그들은 물건을 팔아 이익을 남기는 것이 목적인데 유독 이 새로운 우유에 대해서만은 그런 역할을 거절했다. 백화점 식품부도 마찬가지였다. 『팔다 남으면 반품으로 가져가겠다. 너희들은 손해볼 것 없는 장사인데 왜 거절하느냐.』 『당신네 우유를 받으면 다른 우유를 공급받지 못한다.』 이것이 이유였다. 이미 보이지 않는 견제의 손길이 구석구석 스며들어 있었고, 기존 시장질서의 방어벽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견고하고 두터웠다.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결의가 느껴졌다. 생산을 개시하기 전에 이미 시장의 분위기를 어느 정도 감지하고 있었으나 제품을 만들어 싣고 나왔는데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압구정동의 현대백화점 한군데만 예외였다. 현대백화점은 이 새로운 우유가 강남의 고객들에게 충분히 먹혀들수 있다고 보고 심사숙고 끝에 받아들여 주었다. 그러나 백화점 한 군데에서 하루 몇 십병의 우유를 파는 것만으로 회사를 경영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이청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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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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