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극복 과정에서 아시아 각국은 정부 주도의 금융 시스템 개혁을 추진, 부실은행 정리와 초대형 은행의 탄생이란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 은행권 자체적으로도 기업대출 외적인 수익원 발굴에 나서면서 신용카드, 주택담보대출, 자동차 할부금융 등의 소비자 금융시대가 본격적으로 개막됐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현지 부실은행이 해외 금융자본에 헐값에 매각되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으며, 무분별한 대출로 인한 개인신용 불량 문제도 새로운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한마디로 `절반의 성공`에 머무르고 있는 셈이다.
아시아 국가별 금융개혁 실태를 살펴보면 우선 한국의 경우 외환위기 당시 33개에 달하던 상업 은행이 인수ㆍ합병(M&A) 과정을 거치면서 10개 내외로 통폐합 됐다. 말레이시아 정부도 은행의 자본보유 하한선을 높이는 방법으로 은행권 통합을 추진, 55개의 상업 은행이 10여개로 재편됐다. 이 밖에 타이의 경우 단기 외채상환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던 90여개의 은행을 정리했다.
은행권 통폐합을 골자로 한 금융 시스템 개혁은 금융시장 개방에 대응키 위한 필연적인 수순이란 지적이다. 제티 악타르 말레이시아 중앙은행장은 이와 관련, "이제 말레이시아 은행들은 규모면에서 2007년 자본시장 완전 개방에 대응할 수 있는 정도가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식의 성급한 금융 개혁은 미국 뉴브리지 캐피털의 한국 제일은행 인수처럼 외국 금융자본에 현지 은행이 헐값에 넘어가는 등의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소비자 금융시장의 갑작스런 팽창 역시 대규모 개인 신용불량자를 양산하는 등의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현재 각국 은행들은 기업 대출로 인한 부실채권의 위험을 깨달은 터라 새로운 수익원으로 소비자 금융시장을 적극 개척하면서 관련시장도 급격히 팽창하고 있는 추세다.
실제 신용카드, 주택담보대출, 자동차 할부금융 등 소비자 금융은 외환위기 직후 전체 대출 규모의 27%에 불과하던 게 2002년 말 현재 40%까지 올라섰다. 한국의 경우 특히 신용카드 발급 건수는 지난 99~2002년 사이 매년 75% 이상 급성장 했을 정도.
이처럼 아시아 금융시장에서 소비자 금융의 본격적인 개막은 주요 글로벌 은행들의 현지 진출을 더?부채질 하고 있다.
기업 대출이 0.2%의 수익을 내는 데 반해 소비자 금융은 평균 5% 이상의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기 때문. 시티뱅크가 최근 중국 상하이 푸동개발은행의 지분 5%를 1억2,000만 달러에 매입한 것도 중국의 소비자 금융시장을 노린 포석이란 분석이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그늘도 있는 법. 현재 소비자 금융시장개척에 적극 나서고 있는 은행들은 개인 신용불량자 양산이라는 역풍에 휩쓸리고 있다.
<김창익 기자 window@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