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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 도시] 도심 속 작은 쉼터, 흥국생명빌딩·열린 갤러리

사옥 로비를 시민들에게… 지친 삶 다독이는 '힐링 플레이스'

흥국생명빌딩과 ''해머링 맨''.

로비에 설치된 예술작품 ''2010 아름다운 강산''.

영화관 ''씨네큐브'' 진입로.


세종로사거리서도 한눈에 보이는 해머링맨 따라

10여개 작품들 감상하며 걷다보면 어느새 로비


지하 예술영화관 씨네큐브와도 자연스럽게 연결

소시민들 위한 문화예술 체험 명소로 자리잡아


광화문은 한국의 수도 서울을 대표하는 업무 중심지다. 직장인들로 붐비는 주중과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주말의 풍경이 극명하게 갈리는 곳이기도 하다. 이는 교보문고와 세종문화회관을 제외하고는 마땅히 머물 곳이 없는 광화문이라는 공간이 지니는 특징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교보문고와 세종문화회관은 특정 목적을 지닌 사람들의 발길이 머무는 공간이다. 하지만 이런 광화문 오피스 지구에도 특별한 목적 없이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과 발길을 붙잡는 공간이 있다. 바로 서울시 종로구 신문로 2가 서울역사박물관 맞은편에 위치한 '흥국생명빌딩과 열린 갤러리'다.

보행자 발길 멈추게 하는 열린 공간… 열린 사옥

지난 2000년에 지어진 흥국생명빌딩은 지하 7층~지상 24층, 연면적 72만㎡ 규모의 평범한 오피스 건물이다. 그렇다 보니 오피스 건물 자체로만 보면 주변 건물들과 구별되는 별다른 특징을 찾기가 쉽지 않다. 대부분의 건축 전문가들도 흥국생명빌딩의 건축학적 의미에 대해서는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국생명빌딩과 열린 갤러리가 도시라는 공간에서 차지하는 의미는 작지 않다. 대부분의 오피스 건물들은 일반 도시 보행자들의 접근을 제한하는 닫힌 공간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오피스 건물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도심의 풍경이 삭막하게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흥국생명빌딩은 다르다. 흥국생명빌딩과 그 주변을 둘러싼 열린 갤러리는 지나가는 보행자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고 시선을 끌어당긴다. 건축 전문 잡지인 '다큐멘텀'을 만드는 건축 전문 사진가 김용관씨는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기업들이 시민들에게 회사 사옥의 로비를 내주는 일이 드물었다"며 "흥국생명빌딩과 열린 갤러리는 사옥을 시민들에게 열어준 공간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박철수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도 "축적된 자본의 논리가 팽배한 비정한 도시에서는 사옥이 얼마만큼이나 공간을 점유하느냐가 중요하다"며 "그런 점에서 흥국생명빌딩은 삶에 지친 소시민들의 마음을 달래고 위안을 주는 역할을 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13년간 망치질 340만번 …광화문 랜드마크 해머링 맨

흥국생명빌딩과 열린 갤러리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해머링 맨(Hammering Man)', 즉 망치질하는 사람이다. 해머링 맨은 높이가 22m로 지금까지 발견된 공룡 중에서 가장 키가 큰 것으로 알려진 사우로포세이돈(16~17m)보다도 크며 무게도 50톤에 달해 세종로 사거리에서도 한눈에 들어온다. 해머링 맨은 2002년 6월4일부터 망치질을 시작했으며 오전8시부터 오후7시까지 1분에 한 번씩, 하루 660회 쉬지 않고 망치질을 한다.


과거에는 노동절인 5월1일에만 망치질을 하지 않았으나 최근 토요일과 일요일, 그리고 공휴일에 망치질을 쉬는 것으로 바뀌었다. 2002년부터 지금까지 한 망치질만 약 340만 번에 달한다. 이에 올해 6월부터 8월까지 약 두 달간은 노동에 지친 해머링 맨에게 12년 만에 처음으로 휴식을 주고 노후 부품 교체와 도색 작업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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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머링 맨을 만든 미국 작가 조너선 브로프스키는 1976년 튀니지 구두 수선공이 열심히 망치질하는 사진을 보고 노동자들의 심장 소리를 느꼈다고 밝혔다. 그는 여기서 영감을 얻어 '노동에 대한 숭고한 가치'를 표현한 해머링 맨을 만들었다. 1979년 미국 뉴욕에서 3.4m 높이의 해머링 맨을 처음으로 소개했으며 이후 독일 프랑크푸르트(21m), 노르웨이 릴레스트룀(12m), 스위스 바젤(13.4m) 등 유럽 세 곳과 미국 시애틀(14.6m), 캘리포니아(10m), 댈러스(7.3m) 등 미국 도시 7곳을 포함해 전 세계 11곳에 해머링 맨을 설치했다. 아시아에서는 광화문에 설치된 해머링 맨이 유일한 작품이며 전 세계에서 가장 키가 크다.

도심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은 흥국생명빌딩

공간적으로 보면 해머링 맨은 흥국생명빌딩 외부에 자리 잡고 있다. 잠시 동안 시민들의 시선을 끌 수는 있겠지만 시민들을 사옥 내부로 끌어들일 수 있는 요소는 아니다. 시민들이 흥국생명빌딩을 딱딱한 사옥이 아닌 편안한 문화 휴식 공간으로 인식하는 것은 해머링 맨뿐 아니라 흥국생명빌딩 주변의 섬세한 예술작품들이 자연스레 1층 로비로 이어지고 이는 지하 2층의 예술영화를 주로 상영하는 영화관인 '씨네큐브'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실제 흥국생명빌딩의 열린 갤러리에는 해머링 맨을 포함해 10여개가 넘는 예술작품들이 설치돼 있다. 네덜란드 건축집단 메카누가 선보인 프로젝트인 '해머링 맨 흥국광장'은 흥국생명빌딩 앞을 흐르는 강처럼 설치된 벤치와 반딧불과 같은 형태를 보이는 조명으로 시민들의 발길을 자연스레 1층 로비로 향하게 한다. 로비에서는 네덜란드 조각가 프레 일겐이 설치한 '당신의 긴 여정(Your Long Journey)'과 강익중의 '2010 아름다운 강산'을 만날 수 있다. 여기에 씨네큐브는 대형 영화관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전 세계 각국의 예술영화들을 상영하며 시민들이 보다 오래 흥국생명빌딩에 머물 수 있도록 한다. 박 교수는 "흥국생명빌딩 사옥은 공공이 운영하는 공식적인 문화공간은 아니지만 시민들이 문화예술을 즐기는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건물도 공공의 삶 배려 '염치' 있어야

형식적 '공개공지' 마련… 시민 접근 어려운 곳 많아

염치(廉恥)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체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다. 건물에도 염치가 있다.

건축가 이경훈씨는 '못된 건축'이라는 책에서 "도시의 혜택은 당당히 누리면서도 공동의 이익보다는 제 이익만을 좇는 건축물은 염치가 없는 건축물"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도시의 건축은 도시적인 공공 공간을 배려하고 살피는 것으로 시작하며 이 같은 도시적인 건축은 모두를 행복하게 만든다"고 강조했다. 시민들에게 문화를 즐기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 흥국생명빌딩은 염치를 차린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다.

제도적으로 도시의 건축물들이 염치를 차릴 수 있는 방법은 '공개공지'를 활용하는 것이다.

공개공지란 연면적 합계 5,000㎡ 이상인 업무·판매·종교·숙박시설 등 다중이 이용하는 시설로서 건축조례로 정하는 건축물에 한해 대지면적의 100분의10 이하의 범위에서 일반이 사용할 수 있는 소규모 휴게시설 등을 설치하는 것이다.

그런데 도심의 건축물 중에는 공개공지를 적극적으로 시민들에게 내어주지 않고 어쩔 수 없이 만들어 놓은 듯한 인상을 주는 건축물들이 적지 않다. 박철수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는 공개공지를 제대로 활용하지 않는 대표적인 염치 없는 건물로 종각역에 위치한 '종로타워'를 들었다. 종로타워의 공개공지는 건물 뒤편에 자리 잡고 있다. 이 때문에 길을 오가는 보행자들이 쉽게 발견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기자가 직접 가본 종로타워 공개공지는 입주민들과 일부 보행자들의 흡연장소로 사용되고 있었으며 대다수 시민들이 누릴 수 있는 휴식공간과는 거리가 멀었다. 박 교수는 "도심에 있는 많은 건축물들이 공개공지를 마련하고 있지만 실제 시민들의 물리적 접근을 어렵게 해놓은 경우가 많다"며 "제대로 된 공개공지라면 시민들의 접근에 장애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송은석기자


고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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