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특파원 칼럼] 中고속철 참사와 등돌린 민심

"미국의 CIA나 FBI가 사고원인을 조사하게 해라." "낙뢰에 대처할 시스템조차 없다는 게 말이 되나." 요즘 중국에서는 지난 23일 저장성 원저우에서 발생한 고속철 추돌사고와 관련해 인민들의 민심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어이없는 사고 자체도 문제지만 사고 이후 중국 당국의 안이하고 무책임한 인명구조 행태나 사고원인을 은폐하려는 모습 등에 분노하는 글들이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 등 인터넷을 가득 메우고 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 인민일보 자매지인 광명일보 등 현지 언론들도 이번 사고를 부실이 부른 인재로 규정하고 사고원인을 명백히 밝히라고 촉구하는 기사를 연일 싣고 있다.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사고 직후 인명구조에 만전을 기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당국이 24일 인명 구조작업 종료를 발표한 뒤에도 추락 객차 잔해에서 3세 여아가 발견되고 3구의 시신이 나오면서 졸속 구조작업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사고 후 나흘이 지났지만 사망자 명단조차도 공개되지 않고 있을 정도다. 철도부의 대응은 더욱 가관이다. 왕융핑 철도부 대변인은 벼락으로 전기가 끊겨 열차가 멈춰 섰고 자동신호기 작동이 중단돼 사고가 발생했다며 중국 고속철 기술은 여전히 세계 최고라며 강변을 늘어놓았다. 사고원인을 천재지변 탓으로 돌리는 것도 문제지만 재발방지 대책을 내놓아도 시원찮을 판국에 최고 기술을 운운하는 당국의 모습에 다들 할말을 잃어버리고 있다. 사고원인 파악의 단서가 있을 수도 있는 추락 기관차를 굴착기를 동원해 파묻은 것을 놓고 중국 정부가 진정으로 원인규명 의지가 있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급기야 철도부가 막대한 비용 부담을 이유로 적절한 낙뢰보호 시스템을 설치하지 않았다는 증언까지 나오면서 차제에 철도부를 전면 수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중국 정부는 오는 2020년까지 수백조 원을 쏟아부어 1만6,000㎞의 고속철을 깐다는 야심찬 목표를 세웠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안전문제는 뒷전으로 밀렸던 것이다. 그런가 하면 올 2월 뤄즈쥔 철도부장이 100억위안(1조6,500억원)대의 부패에 연루된 혐의로 구속된 데 이어 쑤순후 수송국 부국장 등 철도부 고위 인사들이 줄줄이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되거나 조사받고 있다. 베이징의 한 외교 소식통은 "이번 고속철 사고는 화려한 양적성장 뒤에 만연해 있는 중국 사회의 부패와 부실구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말했다. 후진타오 주석은 인민 모두가 공평한 기회를 갖고 조화롭게 사는 선진사회를 구축하자며 '허셰(和諧)사회'를 정책구호로 내걸고 있다. 중국 전역에 숨가쁘게 뻗어나갔던 고속철은 허셰사회의 상징물이었다. 하지만 고속철은 이제 중국 정부에 대한 인민의 신뢰 기반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앞으로 중국 정부가 어떻게 위기에 대응해나가는지를 세계는 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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