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리크 쥐스킨트는 베스트셀러 소설 ‘향수’에서 지상 최고의 향수를 위해 스물 다섯번의 살인을 마다하지 않는 주인공 그르누이의 악마적인 일대기를 펼쳐 놓았다. 인간의 감각 가운데 가장 신비하면서도 매혹적인 후각을 주제로 이보다 더 흥미로운 소설은 찾아 보기 힘들다. 하지만 소설이 아닌 논픽션에서는 쥐스킨트의 작품만큼 박진감 넘치는 책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루카 투린의 ‘향수’라는 책이다. 루카 투린은 1953년 레바논에서 태어난 이탈리아인. 1978년 런던 브리티시대학에서 생물물리학 박사를 받았지만 사실 후각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았다. 그가 향기에 홀리기 시작한 것은 인간의 콧속에는 냄새 분자를 포착하는 생체 분광기 같은 기관이 있다는 한 영국 과학자의 개념을 접한 뒤부터다. 투린은 독학으로 향수에 관한 연구에 몰두하면서 결국 냄새는 진동이라는 ‘진동 이론’을 발전시킨다. 하지만 그의 진동 이론은 기존 과학계에서 주장해 온 형태 이론을 정면 반박하는 것이어서 형태론자로부터 이단아 취급을 받는다. 투린은 자신의 진동 이론을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들을 묶어 과학잡지 ‘네이처’지에 제출하지만 네이처는 이 논문을 1년 가까이 보류하고 끝내 실어주지 않는다. 사실상 후각 이론계를 꽉 쥐고 있는 형태론자들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아직 실존하고 있는 외톨박이 과학자의 이야기라는 독특한 소재가 재미를 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