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16년 만에 ‘사망자’ 딱지 떼어낸 40대 절도범

국민참여재판 前 재판부 선처로 신분회복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김형두 부장판사)는 18일 술 취해 길에 잠들어 있는 취객의 지갑을 훔친 혐의(특가법 절도)로 구속 기소된 이모(44)씨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을 진행했다. 지난 6월 이씨는 서울 관철동에 있는 삼일빌딩 앞 노상에서 술에 취해 잠들어 있는 피해자의 바지 뒤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던 중 현장에서 경찰관에게 체포됐다. 하지만 경찰이 붙잡은 이씨는 놀랍게도 ‘사망자’였다. 그가 죽은 사람으로 살아가게 된 이유는 복잡한 가정사에 있었다. 출생 직후 아버지가 사망했고 어머니까지 가출한 뒤 할머니 밑에서 자라던 그는 11살이 돼서야 큰아버지의 아들로 출생신고를 거쳤다. 이후 가족들과 연락이 닿지 않았던 때가 있었는데 이때 친척들은 그의 실종선고를 청구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1995년 3월 14일부로 이씨는 사망자가 됐다. 그러나 이씨는 행적을 감췄을 뿐 죽은 상태는 아니었다. 절도죄로 1993년 3월부터 교도소에 수감 중인 상태였던 그는 실종 선고 후 10여 일이 지나 출소했지만 곧 ‘죽은 사람’ 취급을 받았다. 주민등록이 말소돼 어떤 곳에도 취직을 할 수 없어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이씨는 결국 절도범행을 반복해 1995년부터 올해 5월 말까지 교도소를 5차례나 오갔다. 사건을 담당한 재판부는 피고인에 대한 형사처벌도 필요하지만 사망자의 신분에서 벗어나 출소 후 생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씨도 법정에서 “호적상 사망상태이다 보니 신분증이 없어 출소 후 직장을 구하는 것은 물론 노동일도 하기 어려웠다”며 “호적을 살리려 해도 행정기관은 책임을 미뤘고, 교도소에 있을 때는 신청할 비용도 없었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에 국선변호인은 10지 지문번호 대조자료를 이용하여 피고인과 위 사망자가 동일한 사람이라는 점을 밝혀내 이씨는 지난 8월 24일 강릉지원에서 실종선고 취소심판을 받았다. 16년여 만에 비로소 사망자 신분에서 벗어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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