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삼성SDS 청약 뭉칫돈 15조 몰렸다] 실체 드러난 부동자금… MMF 100조 등 증시 유인대책 시급

투자처 못찾은 돈 750조<br>시장 불확실성 커지자 ELS 등에만 반짝 투자<br>땜질식 단기 처방보다 중장기적인 정책 필요


삼성SDS의 공모청약에 참여하려는 투자자들이 청약 마지막 날인 6일 서울 여의도 한국투자증권 본점을 방문해 상담하고 있다. /권욱기자

"한국에 이렇게 현금을 가진 사람이 많은 줄 몰랐습니다."

삼성SDS 공모청약 광풍을 바라보던 모 증권사 지점장의 말처럼 이번 공모를 통해 국내 투자시장에 안착하지 못하고 떠돌고 있는 부동자금의 민낯이 여실히 드러났다. 15조5,000억원대의 자금이 몰리며 깜짝 놀랄 만큼의 광풍을 일으켰던 삼성SDS 공모청약이 화려하게 마무리됐지만 국내 자산시장의 어두운 단면도 드러났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결국 그 많은 투자자들은 지금까지 시장에 투자하기보다는 현금으로 보유하고 있었다는 설명이기 때문이다.


6일 마무리된 삼성SDS 공모청약은 기관투자가 수요예측에만 450조원가량이 몰리고 개인공모에도 15조5,000여억원이 몰린 말 그대로 '흥행 대박'이었다. 많은 자금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모처럼 자본시장에 활기가 돌았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은 역설적으로 자본시장에 그만큼 투자할 곳이 없다는 방증이 되고 있다. 1억원 가까이 넣어봐야 7주밖에 못하는 상황이지만 15조원 이상의 자금이 몰렸다는 것 자체가 시장 주변에 갈 곳을 잃은 부동자금이 넘쳐나고 있다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당장 청약에서 빠져나온 수조원 규모의 증거금 또한 시장에 안착하지 못하고 시장 주변을 떠돌 것이라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갈 곳을 잃고 방황하는 막대한 규모의 자금을 증시로 끌어들이기 위한 중장기적 대안이 시급해 보인다.

◇증시 주변 맴도는 부동자금=지난 8~9월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취임 전후 경기 활성화에 대한 기대감에 활기를 띠었던 주식시장은 10월 중순 이후 다시 침체를 겪고 있다. 박스피라는 오명을 듣던 코스피지수가 박스권을 가뿐하게 뚫고 나왔지만 탄력을 잃고 현재 1,930선도 간신히 유지하고 있다. 연이은 기준금리 인하에 따른 저금리 상황과 삼성전자·현대차를 비롯한 간판 기업들의 실적 저하, 여기에 일본의 양적완화로 인한 엔저 공습 등 각종 악재가 코스피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철옹성 같던 시가총액 2위 자리를 내준 현대차를 보면서 투자자들은 증시에서 한 발 더 뒤로 물러나고 있다.

시장으로부터 멀어진 투자자금은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대표적 단기부동자금인 머니마켓펀드(MMF)의 설정액이 5년2개월 만에 100조원을 넘어섰다. 4일 기준 MMF 설정액은 100조9,689억원으로 2009년 8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언제든지 주식시장에 들어갈 준비가 돼 있는 MMF 자금이 증시로 흘러들어가지 못하고 계속 쌓이고만 있다. 현금과 요구불예금, 수시입출식 저축성예금, 종합자산관리계좌(CMA) 등을 합친 단기부동자금이 사상 최대 수준인 750조원을 넘어섰다는 소식도 나오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의 한 관계자는 "미국의 양적완화 정책 종료 및 금리인상 추진 등이 국내 증시와 경기회복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우려되면서 안전자산 선호심리가 고조되고 있다"며 "10월 들어서만 MMF에 10조원이 순유입됐다"고 말했다.


삼성SDS 청약 열풍에서 보듯 자산가들은 평소 금융상품 투자보다는 현금으로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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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금융자산 10억원 이상의 자산가들을 조사한 결과 금융자산 중 '현금 및 예적금'이 47.9%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주식은 13.5%, 펀드는 11.5%에 그쳤다. 글로벌 경기회복이 지연되면서 투자처를 찾지 못한 대기성 자금이나 장기 저축성 보험을 활용한 절세형 투자 등에 초점을 둔 영향으로 해석되고 있다.

◇ELS·배당 상품에만 반짝 투자=투자 방향을 잃어버린 부동자금은 지수형 주가연계증권(ELS), 배당 관련 상품에만 몰리고 있다. 올해 ELS는 사상 처음으로 발행규모가 50조원을 넘어섰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5일 기준 ELS 발행잔액은 53조6,101억원이다. 지난해보다 10조원 가까이 늘었다. 10월에만 7조원 규모의 ELS가 신규 발행됐다. 배당주 펀드도 올해 덩치를 키우고 있다. 올해 배당주식형 펀드에 들어온 자금은 2조5,161억원에 달한다. 국내 주식형 펀드에서 올해 3조4,771억원이 빠져나간 것과는 대조적이다.

하지만 규모를 키워가고 있는 ELS와 배당주 펀드를 두고 시장에서는 투심이 움직이고 있다고 확대 해석하기에는 이르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홍배 삼성증권 삼성타운지점장은 "올해 초 롱쇼트 펀드에 이어 ELS, 최근에는 배당주 펀드 등에 자금이 몰리고 있다"면서 "하지만 이들 상품은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작고 정책 수혜를 기대할 만한 상품이지만 그만큼 기대수익률이 낮은 상품으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자금이 안정적인 상품에 잠시 머물고 있을 뿐"이라고 분석했다.

모 증권사 프라이빗뱅커(PB)도 "ELS나 배당주 펀드, 공모주에 자금이 몰린다고 시장이 활성화될 것이라는 전망은 금물이고 실제 이들 상품에 몰리는 자금이 증시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며 "주가지수·환율·거시경제지표 등 어느 하나 예측하기 어려운 시장에 투자자들이 투자에 나서기보다는 관망할 확률이 높다"고 전망했다.

◇땜질식 단기처방보다 근본적인 대책 필요=지금까지 정부는 각종 부동산대책과 배당 확대 등 시장 활성화를 위한 방법을 끊임없이 제시했다.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완화 이후 반짝 상승하던 부동산 시장은 강남 등 일부 재건축 시장 위주로 제한적인 효과를 보였고 증시 활성화 차원에서 마련한 배당 확대 방안도 아직까지 시장 지표에 시그널을 주지 못하고 있다.

김준석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경기 펀더멘털 자체가 회복하지 못하고 있고 소득 양극화가 더욱 심해지는 상황에 아무리 증시 활성화 대책을 마련해도 효과는 미미할 것"이라며 "단기처방식 미시적 정책보다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경제체질을 바꿀 수 있는 거시적 경제정책을 마련해야 경기는 물론 주식시장도 활성화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노현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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