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전력민영화 현장을 가다] (상) 칠레

90년대 들어 세계 각국이 전력산업에 경쟁을 도입하는 구조개편에 나서고 있다. 지난 90년 영국을 필두로 노르웨이(91년), 스웨덴(92년)등 유럽국가들은 전력산업 구조개편을 이미 마무리 지었으며, 뉴질랜드 미국 호주 핀란드 일본 등은 90년대 초반부터 개편작업을 진행하고 있다.칠레의 경우 83년에 전력산업을 민영화했다. 그동안 전력산업은 초기에 거대자본이 투입되어야 하는 특성 때문에, 일반 상품과는 달리 저장성이 없는 데다 전달속도가 광속에 가깝다는 전기의 특성 때문에 국가 독점과 통제가 불가피하다고 여겨져 왔다. 그러나 기술의 발달과 효율을 중시하는 시장경제 논리가 확산되면서 이 사고의 틀도 여지없이 허물어지고 있다. 공적 독점이 내재하고 있는 비효율 구조를 깨고 소비자들이 보다 싸고 질좋은 전기를 골라 쓸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전력산업 구조개편의 명분은 이제 세계적 흐름으로 굳어지고 있다. 선진국들보다 늦었지만 우리나라도 지난 97년 6월부터 전력산업구조개편위원회를 중심으로 현재 한국전력이 독점하는 전력산업에 경쟁을 접목시키려는 시도를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전력산업 구조개편의 골격은 발전-송전-배전을 각각 분리해 민영화하는 것이다. 이같은 흐름을 배경으로 서울경제신문은 우리보다 한발 앞서 전력산업 구조개편을 단행한 칠레와 아르헨티나 전력 민영화의 과정과 실상을 2회에 걸쳐 점검한다. ◇전력산업 구조개편의 파이어니어 칠레는 고추 모양의 가늘고 긴 나라 정도로만 알려져 있다. 안데스 산맥과 아옌데, 피노체트 대통령. 우리 상식 속에 칠레는 스페인 식민지에 이어 오랜 기간의 군사독재로 찌든 후진국으로 그려져 있다. 땅덩어리가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주변 국가에 비해 큰 편도 아니고 경제 대국도 아니다. 국내총생산(GDP)은 790억달러(지난 98년 추정치)로 우리나라의 3,213억달러(98년 기준)의 4분의 1수준에 못 미친다. 그러나 전력산업 구조개편에 관한 한 칠레는 세계적 선구자다. 칠레는 선진국들도 90년대 들어서야 손을 댔을 정도로 엄청난 모험이 필요한 작업을 이미 20여년전부터 시작했다. 전력컨설팅업체인 시넥스(SYNEX)에서 파트너로 일하고 있는 세바스찬 베른스타인(SEBASTIAN BERNSTEIN)의 말. 『칠레 정부는 지난 78년 전력산업에 대한 급진적 구조개편에 착수했습니다. 당시는 피노체트대통령의 군사독재 시절이었어요』 칠레가 일찍부터 정부 독점의 전력산업 개편에 나서게 된 출발점은 신자유주의 노선 때문이다. 칠레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인플레를 잠재울 목적으로 피노체트정권때부터 개방과 민영화, 세금 및 공공 지출의 축소를 골자로 한 신자유주의 노선 정책을 유지했다. 이를 통해 인플레를 안정시키고 낮은 실업률로 투기성격이 짙은 핫머니가 흘러들어오는 것을 억제하는 한편,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는 방법으로 경제성장을 꾀하려 했던 것이다. 구조개편의 대상은 규제 절차와 전력산업 소유구조 2개 분야로 크게 분류됐다. 구조개편전 칠레의 전기요금은 철저하게 정부의 손에 의해 결정됐다. 투자보수율에 기초한 요금이었다. 『현재 전기요금은 공개시장에서 결정됩니다. 요금 결정에 정부의 간섭이 허용되지 않도록 가격결정 메커니즘이 세워져 있습니다』 칠레 최대의 발전회사인 엔데사-칠레(ENDESA-CHILE)의 지주회사인 에너시스(ENERSIS) 전기부문 개발부사장 에밀리오 코발루비아스(EMILLIO COVARRUBIAS)의 설명이다. 그는 전력부문의 소유구조도 크게 뒤바뀌었다고 덧붙였다. 지난 78년 칠레의 전력산업은 엔데사(ENDESA)와 칠렉트라(CHILECTRA)등 2개의 수직통합 공기업에 의해 좌지우지됐었다. 그러나 현재 칠레에는 24개의 발전회사와 9개의 송전회사, 33개의 배전회사가 경쟁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이중 많은 회사들은 칠레증권거래소에 상장되어 활발하게 거래되고 있다. 전력관련 주식의 거래량이 전체 거래량의 절반에 육박할 정도. 대량 거래가 이뤄질 수 있는 이유는 그만큼 전력회사들의 소유권(주식)이 소규모 투자자 사이에 광범위하게 분산되어 있기 때문이다. 민영화된 전력회사들은 비용 줄이기로 전기요금이 낮게 유지될 수 있도록 경쟁했다. 에밀리오 부사장은 『지난 90년 1월 1 메가와트(MWH)당 평균 55센트(US CENTS)에 달하던 발전비용은 9년후인 98년 12월 16센트로 크게 떨어졌다』고 말했다. 발전비용이 줄어들수록 소비자들은 저렴한 전기를 쓸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칠레 전력시장의 구조 전력은 특성상 정부의 규제가 불가피하다. 민영화된 전력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다만 법과 규제가 투명해야만 시장기능을 제대로 살릴 수 있다. 현재 칠레 전력시장을 규제하고 있는 법은 지난 82년 공포된 칠레전기법. 칠레 전력시장은 칠레전기법에 따라 발전을 맡고 있는 발전회사와 전기를 배전회사에 배달해 주는 송전회사, 최종 소비자에게 전기를 파는 배전회사등 크게 3개분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칠레 전력부문의 기본 규제기관인 CNE(NATIONAL ENERGY COMMISSION)와 에너지부 산하의 SEC(SUPERINTENDENCY OF ELECTRICITY&FUELS)의 규제를 받으며 영업활동을 하고 있다. 산티아고 대통령궁과 인접해 있는 CNE는 전력투자계획과 정책을 조율하고 규제 가격을 결정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가격담합 등을 고려해 최대소비요금을 정하는 것도 CNE의 몫이다. 『강제기관으로 볼 수 있는 SEC는 주로 시장 참가자들의 불만을 해결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SEC관계자는 칠레의 발전지역은 북부(SING)와 중남부(SIC)로 크게 구별되며 발전회사들은 CDEC라는 협의회를 만들어 정부와 시장 가격을 협의한다고 설명했다. ◇투명한 규제 칠레의 전력산업 구조개편은 성공적이다. 전기요금은 시장논리에 따라 결정되고 있으며 수력발전소를 비롯한 전력부문에 광범위한 민간투자가 이뤄졌다. 공적 독점으로 인해 경직되어 있던 전력시장은 민영화이후 한층 역동적인 모습으로 변하고 있다. 발전, 송전, 배전회사와 그들 고객간의 계약이 새롭고 다양한 형태로 이뤄지고 정부의 규제는 투명하다. 칠레의 전력산업 규제체제는 정치의 영향력에서 실질적으로 완전히 독립된 특별법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 아드리안 파가니(ADRIAN PAGANI) 엔데사-칠레 이사는 『칠레가 브라질, 우루과이등 주변 국가처럼 내각의 정치적 고려에 따라 전기요금과 투자가 결정되지 않고 선진화된 전력산업체제를 갖추게 된 것은 규제가 시장경제에 맞춰져 투명하게 이뤄졌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칠레의 전력산업 개편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원동력은 잘 정비된 관련법과 진보된 규제체제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는 투자를 한 데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에두아르도 리케(EDUARDO RICHE) CDEC회장은 『칠레는 세계 최초로 전력산업 구조개편에 착수했으나 그동안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다. 무려 20여년동안 고치고 다듬어왔으나 아직도 손 봐야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고 말했다. 칠레=산티아고/박동석 기자 EVEREST@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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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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