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세계의 사설/5월 25일] 발트해 국가들이 주는 교훈

지난 여름 그리스의 재정위기가 불거지면서 케인지언들은 그리스가 재정위기에서 벗어나려면 통화를 평가절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에스토니아ㆍ리투아니아ㆍ라트비아의 사례를 통해 더 좋은 방도를 찾을 수 있다. 이들 국가는 통화의 평가절하 없이도 재정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예를 보여줬다. 에스토니아가 재정 적자 위기를 극복한 비밀은 통화 안전성에 있다. 지난 1991년 소비에트 연방에서 분리된 지 1년도 채 안 돼 에스토니아 경제학자 스티브 한케가 고안한 마르크화(독일 통화)와 연계한 커런시 보드(통화위원회 제도)를 도입했다. 이는 독일 통화가 유로화로 바뀌고 세계가 금융위기로 출렁거려도 에스토니아가 강세 통화와 끈끈한 유대 관계를 유지하는 데 한몫했다. 리투아니아도 2002년 유로와 연계하기 전까지 '달러와 연계하는 커런시 보드'를 유지했다. 라트비아 역시 국제통화기금(IMF)의 특별인출권(SDR)에 고정시킨 페그제를 시행하다가 2005년 유로에 고정시킨 페그제로 전환했다. 커런시 보드 체제 아래에서는 중앙은행이 국내 통화량과 동등하게 외화를 비축한다. 새 돈을 초과해 만들어낼 수 없고 언제든지 그리고 양이 얼마가 되든 간에 국내 통화를 페그화된 통화와 맞바꿀 준비를 하고 있다. 이러한 체제는 중앙은행이 통화 정책을 통해 경기 사이클에 개입하는 것을 차단한다. 또한 외국인 투자가들을 끌어들이려는 이머징 마켓 국가에 특히 유용하다. 외국인 투자가들은 대개 정치권의 잘못된 시장 개입을 염려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금융 공황이 최고조에 달해 IMF가 평가절하를 역설했을 때도 발트해 국가들은 커런시 보드를 끝까지 고수했다. 라트비아는 정부 지출에 고삐를 죄고 라트비아 통화의 평가절하를 막기 위해 2009년 20% 넘게 공공지출과 고용을 삭감했다. 에스토니아는 15% 이상 지출을 줄여 재정 적자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1.7%로 낮췄다. 이러한 감축은 투자자들의 신뢰를 부활시켰고 평가절하로 초래되는 파산을 막아줬다. 7,500억유로 안정화 기금을 조성하기로 한 유럽연합(EU)의 결정은 각 국가가 자신의 재정을 책임져야 한다는 유로의 기본원칙을 침해한다. 에스토니아 재무 장관이 언급했던 것처럼 에스토니아는 통화 정책에 그다지 개입할 의지가 없어 보인다. 발트해 국가들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유럽의 문제는 유로화가 아니다. 문제는 정치계의 잘못된 재정 정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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